brunch

나는 사람을 돌보며 나를 다시 배웠다.(1)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길 위에서 ,함께 웃고 함께 견디며 깨달은 것들.”

by 최국만

아침 6시40분,

내가 돌보는 지적장애 청년 집에 도착했다.

말이 없고,감정 표현도 서툴지만,그의 눈빛은 나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시간이,어느새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를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돌봄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돕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내 삶을 가만히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이름은 제도적으로 정해진 직업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들과의 동행 속에서 ,사람을 다시 배우고,나를 다시 배우고 있다.


사람의 인생은 예기치 못한 굽이마다 새로운 의미를 품습니다.

가난한 시절,공장에서 땀을 흘리며 빵 한 조각으로 버텨야 했던 청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고단한 시간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은 꺼지지 않았고,

책 한 권과 희망 하나가 내 삶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사람은 누군가의 손길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방송국 PD로 살아가며,나는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일을 했습니다.장애 인권이 무시 받는 현장,

밀렵 현장에서 죽어가던 야생동물,현장에서 고통 받던 노동자 등 수많은 현장 취재를 통해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위해서 20년 이상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나 자신 또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부터‘나의 일은 누군가를 돕는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늘 묻습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하는가?”


노자는 무위의 삶을 말하며,억지로 가지 않고 흐름에 따르는 지혜라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연기의 법칙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단순한 명령 속에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담아냅니다.


나는 이 세 가지 가르침이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고 느낌니다.

‘나‘라는 존재가 홀로 선 것이 아니라,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며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진리 말입니다.


이제 은퇴 후의 삶에서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습니다.

말 한마디로 세상과 소통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 곁에서,그의 눈빛과 손짓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나는 압니다.

그 침묵 속에도 마음이 있고,교감이 있다는 것을 .


그와 함께 걷고,웃고,때로는 눈물 지으며 배우는 것은 ‘돌봄이란 곧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이름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내 삶의 궤적이 인도한 숙명 같은 길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청년의 눈물,

사회적 약자를 비추던 방송인의 땀,

그리고 지금 곁을 지키며 나누는 작은 미소까지.

모든 것이 모여 내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묻습니다.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화려한 성공이나 부가 아니라,누군가의 삶을 조금 덜 힘겹게,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곧 내 지난 세월이 내게 남긴 마지막 사명이며,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머무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