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믿음이 빚어낸 기적의 기록.고난과 인내로 채워진 나날들
처음 그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신이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6시40분이면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를 오롯이 그와 함께 보냈다.
함께 운동하고,인지 개발을 위한 다양한 도구를 꺼내며 시간을 나누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같이 해볼까?”. “힘들지 않니?”,넌 정말 잘하고 있어“라고 말을 건네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표정도 없고 눈빛도 닿지 않았다.
내 앞에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의 얼굴 앞에서 ,나는 스스로의 존재가 무력하게 느꼈졌다.
사실 ,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에 함께하던 여성 활동지원사와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난 데다,
덩치 큰 남자가 낯선 보조기구를 가방 가득 들고 와서 함께 산에 오르고,낯선 활동을 권하니
그가 느끼는 혼란은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주말이 되면 지인이나 동생들 모임을 가졌다.
그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청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형님,지금은 처음이라 열정이 넘치지만 …… 3개월 안에 그만두실 거예요,”
“쉽지 않아요.말도 못 하고,표현도 없는 아이랑 하루 종일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예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무너졌다.
스스로도 그들의 말을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느 날,전과는 조금 다른 눈빛 하나가 내게 닿았다.
내 말에 반응하듯 특유의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너무 작고 조용한 변화였지만 ,나의 마음에는 눈물처럼 큰 울림이었다.
‘진심은 통한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반드시 그 사랑으로. 응답할 것이라는 것을 .
그 후로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조금씩,아주 천천히 웃음으로 대답했다.
눈빛으로 나를 따라왔다.
그 조용한 철학자는,그저 느리고 깊게 내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3개월이라는 기한은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나는 1000일을 넘긴다.
함께 걷고,함께 웃고,함께 시간을 살아낸 날들.
이제는 이웃 어르신들이 “그 청년 ,아예 데리고 살아요”라며 농을 던진다.
웃음 가득한 그 말 속엔 ,우리 둘의 동행이 얼마나 빛나는 지를 알아주는 따뜻한 눈빛이 숨어있다.
나는 믿는다.
장애인은 동정 받는 대상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다.
그의 삶에 내가 있고,나의 삶에 그가 있다.
그는 나의 하루를 채우는 존재고,나는 그의 세상을 여는 열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보조자도,관찰자도 아니다.
나는 그의 ‘친구‘다.
그리고 우리는 ‘1000일의 동행을 넘어서,함께 걷는 새로운 ‘평생‘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