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5일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덤으로 받은 마음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 .
괴산 읍내 장터로 통하는 길목에는
농촌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1톤 포터,
비가림이 가능한 스타렉스 밴,
각양각색의 짐차들이 소리 없이 모여든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5일마다 한 번씩 삶이 꽃피는 ‘장터’.
이른 시간에도 상인들의 손놀림은 바쁘다.
해빛을 가릴 천막을 치고,
좌판을 펴고,
수박, 오이, 복숭아, 옥수수, 토마토 같은 제철 작물을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그 손길은 능숙하고 정교하다.
그 자체로 삶의 리듬이자, 생존의 예술이다.
방송 현장에 있을 때,
나는 수많은 장터를 취재하며
그들의 부지런함과 삶에 대한 태도에 감탄하곤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우린 장돌뱅이예요. 증평장,음성장 둘러 오늘은 괴산장.”
“그렇게 멀리 다니시네요.”
“먹고 살아야죠.
거리요? 먹고 사는 데 거리가 어딨어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죠.”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진심이 삶을 이끌고 있었다.
“근데 괴산장은 어때요?”
“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여긴 귀촌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그래도 물건을 좀 사줘요.
참 괜찮은 장터예요.”
그 한마디에
괴산의 따뜻한 민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 부부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장날엔 꼭 나간다.
보통 1킬로미터 남짓 장터를 천천히 걷고,
필요한 것을 사며,
낯익은 얼굴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한번은 애호박을 샀다.
비닐 한 장 펴놓고
남의 좌판 옆 자투리 공간에 앉아 있던 할머니.
“얼마예요?”
“이거 다 팔고 버스 타야 돼.
시간 놓치면 큰일 나.”
애호박 5개를 다 샀더니
할머니가 상추 한 줌을 손에 쥐어준다.
“이것도 가져가. 덤이야.”
그 순간,
나는 계산된 돈보다
더 값진 마음 하나를 받았다
애호박 서너 개를 팔아
얼마나 큰 이익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건 단순한 돈벌이의 문제가 아니다.
움직이고, 말 걸고, 웃고, 손을 내미는 일.
그 자체가 삶이고, 관계이고, 사랑이다.
초기엔 비가림 하나 없어
비 오는 날이면 장이 파투 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많은 장비와 설비들이 갖춰졌다.
그 덕에, 장날이 되면
장터는 다시 불야성이 된다.
장날은 만남의 날이다.
멀리서 온 이도, 이웃에 사는 이도
서로를 향해 말 건넨다.
“아이고, 장에 나오셨네요.”
“그간 별일 없으셨죠?”
그 짧은 안부에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품성과 정이 담겨 있다.
찹쌀 도너츠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막걸이 한 잔에 속을 데우고,
새로운 물건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장터의 풍경이다.
장터는 물건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다시 살아가는 마음을 주고받는 곳이기도 하다.
괴산에 정착한 지 14년.
이젠 장날이면 반가운 얼굴이 더 많아졌다.
오가며 부르는 이름,
건네는 덤,
묻지도 않은 사는 얘기들.
5일마다 피어나는 이 풍경은
내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괴산의 진짜 얼굴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온기가 있고,
온기가 있는 곳에
장터는 오늘도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