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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동물에게 닿을 때

장날에서 우리 집까지, 두 생명에 귀 기울인 시간

by 최국만


괴산 장날은 소박하다.

삶이 이렇게 살아 있다고, 사람 냄새와 흙내가 함께 흐르고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곳이다.

아내와 나는 천천히 걸으며 장터를 구경했다.


그러다 눈을 떼지 못한 곳이 있었다.

철창 속 동물들.

사람을 기다리는 작은 생명들.


그중에서도

유독 한 마리의 작은 흰 강아지가

온 몸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를 여기서 꺼내주세요.”


꼬리와 눈빛과 떨림으로.

우리는 그 마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별이’는 우리와 함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집에 도착해 별이를 뭉게에게 데려갔을 때

뭉게는 몸을 떨고, 오줌을 흘리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게 기쁨임을 우리는 나중에야 알았다.

구름이가 세상을 떠난 뒤

오랜 외로움 속에서

뭉게는 자기와 닮은 생명의 냄새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외로움은 짧게 말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뼈 속에 박혀

말이 없어도 오래 진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 배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한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별이는 너무 일찍 어미에게서 떨어진 탓에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

주먹보다 조금 큰 몸이

피똥을 흘리며 조용히 누워있을 때

우리 집에는 긴 침묵만이 있었다.


아내는 밤새 숟가락으로 우유를 떠 먹이고

기도하듯 약을 먹였다.


그 손길은 ‘보살핌’이 아니라

한 생명을 붙들어 주려는 사랑의 마지막 줄이었다.


그리고 어느 아침,

별이는 기적처럼 다시 걸어 나왔다.


생명은, 누군가가 부르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날 이후 별이는

완전히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고 별이는 이제 성견이 되었다.

그는 이제 단순히 ‘개’가 아니다.


밤이면

어둠과 적막, 그리고 길고 긴 산의 숨결이 내려오는 들판에서

별이는 조용히 우리 집을 지킨다.


낯선 기척이 들릴 때

별이는 낮게 울음 한 번으로

이 집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한다.


별이의 눈빛은 말한다.


“나는 이 집의 밤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당신들은 내가 지킬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사랑은

조건이 없고, 계산이 없고, 이유가 없다.

그저 ‘존재’ 그 자체로 서로를 붙든다.


나는 아침마다 뭉게와 별이의 집 앞에서

떨어진 낙엽을 쓸다가

가만히 멈추어 바라본다.


바람, 흙, 느리게 익어가는 시간,

옆에서 숨 쉬고 있는 두 생명.


그 순간 깨닫는다.


우리가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우리를 사람답게 길러낸다는 것을.


동물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너는 타인의 외로움에 귀 기울일 수 있는가

너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질문에

조용히, 천천히, 평생에 걸쳐 답하며 살아간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뭉게와 별이는 낙엽 위를 구르며 놀고 있고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고요해진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비를 피할 지붕을 만들어 주고,

뛰어놀 흙을 남겨두고,

곁에 있어주는 것.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사람과 동물, 생명과 생명으로.


사랑은 결국

서로를 지켜주는 일이다.


우리는 뭉게와 별이 , 두 생명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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