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는 데 1년, 살아지는 데 10년
지금 나는 괴산읍 작은절골마을에서 뿌리내리고 산다.
정식으로 귀촌한 지는 어느덧 14년째지만,
사실 괴산과의 인연은 청주KBS로 발령을 받은 1993년부터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괴산을 취재왔었다.
1998년, 연풍면 갈금리에 세컨하우스를 지었다.
청주라는 도시와 방송국 생활에 지쳐, 주말이면 그곳으로 내려와 시골의 공기를 마셨다.
갈금리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숨결’을 배우기 시작했다.
농촌 취재를 다니며 보아온 농민들의 삶도 조금은 이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주말에 내려와 잠시 머무는 것과, 실제로 이곳에 ‘정착해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시골은 낭만이다’라는 말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때만 유효하다.
괴산 미루마을에 완전히 내려온 첫 해,
나는 자신 있게 ‘나름 농촌을 아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그동안의 경험은 체험일 뿐, 정착은 전혀 다른 법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날 마을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 살려면, ‘4척’을 버려야 혀.”
나는 멍하니 물었다. “4척이요?”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아는 척, 잘난 척, 가진 척, 배운 척.
이 네 가지 버려야 진짜 시골사람 되는겨.”
그 말은 내게 작은 충격이자 큰 가르침이었다.
도시에서 통했던 방식은 이곳에선 되레 ‘거리감’을 만드는 요소였다.
겸손이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다.
함께 살아야 하는 마을에서,
모난 자는 혼자 남기 쉽고,
겸손한 자는 언젠가 품에 안긴다.
귀촌 1년차의 나는 조급했다.
빨리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무언가 유익한 존재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아내는 이제 현직에서 은퇴해 고발할 사람 없으니 사람에 대한 부담감 갔지 말고
사귀라고하며 ,나도 모르게 중원대학교 최고위과정에 등록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은 안다.
시골은 속도를 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방향과 품을 가늠하는 곳이라는 걸.
1년차에는 자연도 낯설었다.
비가 오면 축축하고, 눈이 오면 막막했으며,
풀은 왜 이렇게 자라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차에는 안다.
그 모든 변화가, 이 땅이 나를 시험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바뀐 건 ‘관계’에 대한 감각이다.
이젠 누가 힘들어 보이는지,
누가 말이 줄었는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건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귀촌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매일 아침, 이곳의 하늘을 보며
또 한 번 마음을 내어놓는 일의 연속이다.
1년은 뿌리를 내릴 자리를 찾는 시간이고,
10년은 그 뿌리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조용히 ‘4척’을 다시금 내려놓으며
이 마을의 속도에 나를 맞춘다.
그것이 시골에서 살아남는 법이자, 살아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