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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막연하면 망설여라

로망만 품고 시골에 오면 삶이 아니라 상처를 얻게 된다

by 최국만

요즘, 귀촌을 고민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

“농사지으며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망설여라


퇴직한 친구들이 내게 자주 묻는다.

“최PD ,시골 살이 어때? 나도 내려갈까 해“?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막연하면, 내려오지마,준비가 없으면 시골은 생각보다 더 어렵워.”


나는 14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괴산에 내려왔다.

내려오기 5년전부터 시골생활을 준비했다.

처음엔 설렘도 있었고, ‘이제야 사람답게 산다’는 감흥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이었다.

시골살이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리고 그 생존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긴장을 배우는 일이었다.


처음 귀촌할 때 내가 가졌던 막연한 기대들이 있다.

‘공기 맑고, 땅 넓고, 사람 순하고…’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봄이면 잡초가 폭탄처럼 자라났고,

여름이면 뱀과 모기, 가뭄과 습기와 싸워야 했다.

가을이면 수확은커녕 벌레와 새들과 다투고,

겨울이면 난방비와 외로움이 들이닥쳤다.

도시는 ‘편리한 불편’이었지만,

시골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은 ‘자연’이 아니라 ‘관계’였다.

시골의 관계는 도시보다 훨씬 깊고 느리며,

때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깝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의 무게를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배웠다.


귀촌을 준비한다면

무엇보다 ‘나의 내면’부터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으로 오는가?

내가 이 마을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함께 살기 좋은 나’를 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선생님은 방송도 했고, 사람도 잘 만나고, 괴산에 인맥도 많잖아요.”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30년 제작하면서 사람을 절대 사귀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외지인이었고,

한동안은 경계의 눈초리를 감당해야 했다.

그 시절을 10년 이상 견디며 나는 괴산 사람이 되었다.


귀촌은 도피가 아니다.

도전이며, 선택이며, 재구성의 과정이다.

막연한 환상만 안고 들어왔다가 무너지는 이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하고 내려온 사람은

마침내 이 땅과 사람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니 나는 다시 말한다.

귀촌, 막연하면 망설여라.

망설일수록 길은 분명해진다.

그 길 끝에 진짜 당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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