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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선 몰랐던 시간의 깊이

자연의 속도로 살아보니, 비로소 내 삶이 보였다

by 최국만

도시에서 살 땐 시간이 늘 빠르게 흘렀다.

출근을 하고, 취재현장을 가고,핸드폰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나 있었다.

방송 편집을 할때는 그나마도 시간이 부족해

1주일에 3일 정도는 늘 밤을 새웠다.

모든 것이 바쁘고,모든 순간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다 시골로 내려와 살게됐다.

산은 아침을 깨우고,바람이 창을 두드리고,

텃밭의 흙냄새가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곳.

여기서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머무른다’ 는 걸

처음 알았다.


도시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여기서 또렸하게 보였다.

삶도,계절도,내 마음조차도

방송국에서 30년을 넘게 일하며 살았다.

그곳의 시간은 언제나 분 단위, 초 단위였다.

단 1초가 방송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1초는 내게 생명과도 같았다.

‘확인, 점검, 또 살았다

이건 일상이자 생존이었다.


퇴근해도 마음은 퇴근하지 못했다.

가정에서도 방송국의 습관이 따라붙었고

모든 게 급했고, 또 민감했다.

늘 어딘가에 쫓기듯, 그렇게 숨 가쁘게 살았다.


아내도 고단했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마다 출근하고,

퇴근하면 또 나를 챙겨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조용히 말하곤 한다.

“그때… 이혼이 머릿속에 맴돌 만큼 힘들었어.”


도시의 삶은 분명 편리했지만,

그 편리함은 우리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잠시 멈춰 서로를 바라보았고

결심했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조용히 살아보자고.


그렇게 괴산으로 왔다.

처음엔 어색했고 낯설었지만,

자연은 묵묵히 우리를 품어주었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도시의 시간과 달랐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만 했던 도시와 달리

이곳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이불 속에서 졸음과 한참을 밀고 당겨도

창밖의 새소리와 햇살이 깨우는 그 시간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늦잠이 편안한 건,

내가 더 이상 쫓기지 않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땀방울을 훔치다 고개를 들면

산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이 보인다.

구름도 천천히 간다.

바람도, 해도, 나도…

이제는 그렇게 천천히 간다.


1시간이 정말 60분이구나,

1분이 60초라는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그전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그저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시간을 살아간다’는 걸

이곳에서 처음 느낀다.


불교 경전에도 그런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시간도 그렇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붙잡아도 스르르 빠져나간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내게 ‘소모’였고,

시골에서의 시간은 내게 ‘충전’이다.


괴산에 와서 14년.

그 시간의 깊이는

이제 내 마음의 강처럼 잔잔히 흐른다.

아내와 함께 걷는 들길에서,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 사발 나누는 저녁에서,

나는 오늘도 느린 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찾아온 삶,

진짜 우리의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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