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장애인을 통해 배운 삶의 회복
마음의 병을 넘어, 다시 세상으로
그녀는 처음부터 조용한 사람이었다.
실습 첫날, 문을 열고 들어올 때조차도 소리 없이 발을 디뎠다.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건넨 인사 속에는 오랜 침묵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단정했지만, 어디엔가 깊은 상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오랜 세월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다.
취재 현장에서, 카메라 뒤에서, 그리고 지금은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에서.
그래서 이제는 눈빛만 봐도 한 사람의 마음의 결을 읽을 수 있다.
그녀의 눈은 세상을 오래 견뎌온 사람의 눈이었다.
그녀는 실습 첫날, 나지막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집에는 농토도 많았다.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쉬려던 순간,
남편이 갑자기 일어서다가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 이후로 제 세상은 멈췄어요.”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이들은 이미 출가했고, 집에는 혼자였다.
그렇게 반년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햇빛이 싫고, 사람의 말소리도 괴로웠다고 했다.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끈 것은 한 친구의 손길이었다.
“밖에 좀 나와봐. 사람을 만나야 해.”
그 말 한마디가 그녀를 살렸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 공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문득 생각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교육을 신청했고, 마침내 나와 기종이를 만나러 온 것이다.
실습은 네 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녀는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기종이가 조용히 퍼즐을 맞추는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함께 조각을 끼우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건 이렇게 맞추는 게 맞나요?”
“네,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기종 씨가 이 색을 좋아하네요.”
말을 하지 못하는 기종이가
그녀의 손동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소 지을 때마다 기종이의 눈도 따라 웃었다.
말이 없었지만, 둘 사이에는 따뜻한 기류가 흘렀다.
퍼즐 한 판을 완성했을 때,
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하죠. 처음엔 내가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제가 위로받는 기분이에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그 말의 의미를 알고 한 것이었다.
돌봄은 주는 일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그녀는 정식 활동지원사가 되었다.
“선생님, 저 이제 정말 다시 살아보려 합니다.”
전화를 걸어온 그녀의 목소리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침묵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의 병은 누군가를 돌보며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마지막 문장이 지금도 내 귀에 남아 있다.
“저를 살린 건, 친구의 손길과 기종 씨의 눈빛이었어요.”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약 365만 명의 등록 장애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지원할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자격 취득자 약 9만여 명 중 절반가량만이 실제로 활동 중이다.
돌봄 노동의 강도에 비해 낮은 급여와
불규칙한 근무 시간, 사회적 인식 부족이
지속적인 인력 부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녀처럼 스스로의 아픔을 넘어 타인을 향한 마음으로 나서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그들은 제도 속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 그 자체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80명 넘는 실습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나이와 배경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세상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매번 실습 현장에서 느낀다.
그날의 그녀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한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한 인간이
다시 남을 위해 손을 내밀기로 한 순간—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의 회복이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가?’
그녀가 기종이를 돌본 것이 아니라,
기종이가 그녀의 마음을 살린 것이 아닐까.
돌봄이란 결국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실습생들에게 말한다.
“이 일은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돌보는 것이 기종이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봄은 타인을 위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치유하는 여정이다.
나는 그 여정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매일 새롭게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