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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양파 이야기

by 재형

나는 항상 꼴등이다 나와 같이 자란 친구들은 내 주위를 먼저 떠난다 그저 나는 친구들이 다 떠난 후 부족할 때 가볍게 팔려나간다 그런 나는 사람들에게 막 써도 되는 쉬운 양파가 되어버린다 고급적인 모습을 내야 할 때 나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겉이 못났다는 이유로 나는 나의 가치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겉모습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그 판단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은 정말 잔인하다 그 대상이 되어버리던 나는 매일매일 내 심장에 총을 맞은 것 같다 나의 못난 모습이라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나를 봐달라고 외쳐봐도 나에게 손길 한번 안 준다 난 고급적인 곳에 가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 이 현실 때문에 난 점점 더 암울해진다 내 머릿속엔 부정적인 생각들뿐이다 내가 맞은 만큼 나도 때리고 싶다


좋은 생각을 해봐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문득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나만 당하지 말자고 내 불행함을 모두가 겪게 하자고 이 결심을 한 나는 계속해서 다른 친구들을 험담하고 이 세상의 시스템을 불평하면서 화를 낸다 난 나의 행동에 나름 만족한다 내가 당한 게 많으니까


어느덧 많은 시간이 지나 이 세상과의 작별이 다가왔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보니까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당한 일들이 무기가 되어 남에게 그보다 더 큰 피해를 준 건 아닐까? 란 생각이 내 머리를 맴돈다


원하지 않았지만 받았던 상처들이 솔직히 원망스럽다 하지만 그 상처를 이겨내려 한 것이 아닌 오히려 나만 상처받지 말자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가지며 욕하면서 사는 삶은 결코 자기 자신도 타인도 불행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길이란 걸 깨달았다 난 다음 생에 내가 못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양파가 되기로 지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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