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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Feb 10. 2019

나는 정겨운 '동네'에 살고 싶어

교토-오사카 여행 이야기 (2)

 오후 두시 비행기를 타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내려 교토역 근처의 호텔에 도착한 때는 여섯시가 거의 다 되었을 시각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쉬자는 동생을 설득해서 체크인한 방에 짐만 놓고 서둘러 호텔을 나왔습니다. 교토와 오사카의 유명 관광지는 모르지만, 예전부터 교토에 오면 가고 싶은 곳이 딱 한곳 있었거든요. 가족과 함께하는 짧은 여정에서는 우선순위가 될 수 없는 장소라 갈 수 있는 날은 부모님이 도착하기 전, 첫날 저녁뿐이었습니다. 문을 닫는 아홉시 전에는 도착해야 했으니 퇴근 시간대의 혼잡한 도로를 피해 버스 대신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교토 중심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목적지는 이치조치, 바로 케이분샤 서점이 있는 동네였어요. 


 케이분샤를 처음 알게 된 건 땡스서점 덕분이었습니다. 대형체인서점이 아닌 ‘동네책방’, ‘독립서점’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당시, 땡스북스는 교토 이치조치의 케이분샤를 지향한다며 홍대/합정에 문을 열었죠. 대형출판사에 의존하지 않는 개인들의 출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저도 그 시장에 뛰어든 후발대…!) 지금은 국내 독립출판시장이 매우 커졌고 이를 취급하는 독립서점들도 많아요. 작고 평범한 존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려는 변화와 함께 무럭무럭 큰 거죠. 케이분샤는 원조의 원조 격이었으니, 이 서점을 찾는 건 저에게 성지순례나 마찬가지였어요. 


이치조치의 밤 한구석에서 조용히 빛을 밝히고 있던 케이분샤. 오래된 정겨움 같은 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곳을 운영하고 또 즐겨 찾는 사람들의 애정이 묻어있는 느낌이랄까.


 이미 어둠이 짙게 내린 이치조치의 골목 골목을 돌아 벽돌벽의 케이분샤에 다다랐습니다. 서점 겉을 비추는 조명이 은은해서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어요. (간판의 일본어를 읽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서점을 감싸는 빛의 온도만큼 서점 안도 편안하고 따스했습니다. 서점에 켜켜이 쌓인 책들은 표지나 삽화를 보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지만 히라가나는 저에게 작고 동그란 알파벳으로 남아있을 뿐이었으니까요. 언젠가 읽었던 케이분샤 점장의 인터뷰 때문에 책들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더 컸지요. 케이분샤는 대형서점처럼 엄격하게 장르/분야를 구분하여 책을 배열하지 않습니다. 연결고리가 있다면 시집과 자기계발서, 에세이와 해외소설이 나란히 놓이기도 하죠. 다양한 책들을 관계 짓는 재미있고 기발한 진열의 흐름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케이분샤를 둘러보며, 그리고 케이분샤를 나와 이치조치를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동네책방은 책방만 뚝 떼어 그 자체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는 걸요. 책방이 자리하고 역사를 같이해온 그 동네, 그 마을과 함께 보아야만 진짜 매력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인적도 빛도 소리도 드문 이치조치. 낮은 지붕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 예상 외의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반가움. 그러나 동시에 유난스럽게 길에서 도드라지길 욕심내지 않고, 평범한 옆집과 그 옆집의 얼굴을 닮는 우정. 이 동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 동네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케이분샤가 세계의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진 못했을 거예요. 


 케이분샤가 책을 진열하고 손님과 매개해주는 원칙은 대도시와 대조되는 동네, 마을의 매력을 대변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근대의 도시는 철저한 계획 아래 개발된 공간이기 때문에, 구조와 형태, 기능까지 하나의 목적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도시에서 인간적인 삶의 온기가 움틀 자리는 크지 않죠. 그렇지만 동네는 물리적인 공간보다는 인간적 관계망이란 의미에 가까운 어감이예요. 책방에 나와 인근의 몇 안되는 가게를 돌면서 이곳이 정말 동네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신식의 라멘가게나 오래된 이자까야에도 바에는 모두 정답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었죠. 문 닫힌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자 지나가던 주민이 단박에 가게 주인에게 전화를 해주고, 어둠 속을 가르며 마주오던 자전거가 멈춰서 인사하고 장바구니를 자랑하는, 모두의 삶이 어우러져 지탱되는 동네라고.



이치조치의 밤을 밝히던 아직 꺼지지 않았던 작은 가게들. 브로콜리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노래가 떠올랐다. 함께 함에 있어 배려가 가득한 동네라는 느낌이었다.


 제 고향집이 딱 그랬어요.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길에 있던 마을은 삶의 공동체에 가까웠습니다. 참기름 가게는 각 집의 숫가락 개수를 알고 있었고, 구멍가게 아저씨는 신분증 검사 없이도 제 과자봉지에 할아버지를 위한 소주를 넣어주셨죠. 잔칫날이면 마을 어른들은 자신의 경사라도 되는듯  일손을 보탰고, 부모님들은 자식이 저녁에 들어오지 않으면 의례 다른 집에서 식사를 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유년 시절, 온 마을이 키워준 따뜻한 기억이 있어, 저는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가봐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한동에는 170여 가구가 살고 단지 전체는 33동이나 되니, 제가 마음 놓고 인사할 수 있는 이웃이라곤 경비원 아저씨들뿐입니다. 물론 살기야 편하고 안전하긴 하지만, 가끔은 옆집, 아랫집, 윗집과 베란다에 쌓인 귤을 나누며 안부를 묻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불켜진 수많은 창에 둘러싸여 부둥켜있어도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모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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