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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Feb 24. 2019

나루호도-하는 일본인의 자세

교토-오사카 여행이야기 (5)

 여행을 떠날 때는 영어가 전세계의 공용어라는 안일한 믿음을 품곤 합니다. 국가와 도시에 따라 영어가 통용되는 수준은 차이가 있고,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린 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타격률이 가장 높은 언어니까요. 일본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수능에서는 비록 제2외국어를 포기했지만 생존영어에는 강한 편이였으니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짐작했죠. 그러나 일본에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일본인을 만나는 건 어려웠어요. 유려한 영어보다 기본적인 일본어로 시도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지인들의 조언이 정말 사실이더군요. 어째서 일본은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 나라인 것인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녁을 먹기위해 이치조치의 작은 이자카야에 갔지만, 영어를 아예 하지 못하는 주인 내외는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연신 '스미마셍'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혐한은 아니었음)


 저는 달님을 만났을 때 ‘스미마셍’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말을 물어보았습니다. 남은 여행동안 유용하게 쓸 일본어를 장착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사는 사람이 체험하는 일본어가 궁금했어요. 일상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말은 그 언어권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을 제법 파악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막상 와보니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힌트를 얻고 싶었어요. 일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요. 달님은 조금 고민하다가 ‘나루호도’라고 말했습니다. 





 “나라호두?”


 “나루호도.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든데, 우리나라로 치면 상대방 말에 ‘정말!', '과연~', '그렇구나!’ 식의 맞장구치는 말이야.”


 “나루호도- 입에 잘 붙지는 않는데!”


 “그지. 나도 입에 자연스럽게 익기까지 시간이 걸렸어. 그런데 일본인, 특히 일본여자들은 입버릇처럼 써.”





 나루호도 なるほど는 기본적으로 동의의 말입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내리는 동의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에 공감을 표하는 기능에 더 가깝다고 해요. 이 미묘한 차이는 타시카니 確かに란 말과 비교하면 선명해져요. 타시카니도 동의의 말이지만 긍정과 찬성의 뉘앙스가 더 강합니다. 반면, 나루호도는 나는 네 이야기를 잘 듣고 있어, 네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계속 이야기해줘, 같은- 대화에 대한 지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님은 원칙적으로 동의할 필요가 없는 말들-이를 테면 화장실을 찾지못해 어디 있는지 물어볼 때나,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말에 대해서도-에 응답할 때조차 일단 ‘나루호도’라고 말하고 시작하는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루호도라는 말을 알게 된 이래 장난처럼 모든 말에 나루호도를 덧붙이곤 했는데, 그러면서 어슴푸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말이든 우선 맞장구 치는 태도에 대해서 말이죠. 그런 태도 안에서 언어는 날카롭게 상대방을 겨누는 창이 아닙니다. 나의 말이라는 것도 언제나 상대방의 말을 통과하고 나서야 다듬어지게 되지요. 대화 안에서 상대방 쪽으로 바짝 엎드린 듯한 태도라고나 할까요? 여행을 하면서 일본은 스미마셍, 미안하다는 말이 과도하게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종업원에게, 행인에게, 그만 좀 미안해하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할 만큼 말이예요. 나루호도로 대표되는 일본인의 언어습관은 일본의 문화와 민족성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이곳이 제국주의의 산지가 된 것인지는 저에게 더 큰 의문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교토 닌넨자카의 유명한 초밥집의 직원은 서빙을 할 때마다 최소 3번 이상 스미마셍을 말하는 탓에 저희가 더 불편해졌습니다. 서비스의 공급자가 왜 미안해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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