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Aug 24. 2019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지만 (4)

면허는 70%의 노력과 30%의 감각을 요구한다: 좌충우돌 면허취득기


 반복된 훈련으로 마침내 기능시험을 합격하면서 저는 자신감을 +10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장을 벗어나 도로주행연수로 나갔던 도로는 완전히 달랐어요. 교육을 받은 다음날 어깨와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긴장해서 핸들을 꽉 잡고 운전한 탓이었죠. 실제 도로에서 수많은 차들 사이로 주행한다는 건 몇배의 중압감을 감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강사님은 교육 내내 보조 브레이크를 밟으셨고 핸들을 대신 돌려야하는 순간도 겪으셨습니다. 제가 모는 차가 두번이나 인도에 오르자 저는 자신감을 -100 잃었습니다. 무사히 주행교육을 마쳤으나 바로 시험을 볼 준비는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되어있지 않았죠. 일단 학원에 시험을 무기한 연장해 놓았습니다.

 


 운전 연습은 일상에서 후순위로 계속 밀려났습니다. 대학원 수업에, 회사 업무에, 훨씬 재밌고 흥미로운 일들 따위에 말이예요. 연습운전면허는 있었지만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선뜻 도우미가 되어주질 못했습니다. (당연하지요) 결국 주행연습은 학원에 연수 신청을 해 추가 교육을 받는 방법 밖에 없었지만, 일정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가뜩이나 빈약한 운전실력과 감각은 서서히 옅어졌습니다.





 면허를 따야 한다는 생각마저 희미해질 때쯤 학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달 후에 연습면허가 만료되니 그 전에 꼭 시험을 보라는 안내였죠. 연습면허의 유효기간이 1년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학원이 곧 폐업할 예정이라 학원에서 추가 교육을 받는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만료되는 날까지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학과시험부터 다시 보셔야해요.”


 죽기살기로 따는 방법 밖에는 제게 선택권이 없어보였습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지만. 자신 없다는 이유로 기회를 포기하기에는 1년 넘는 시간동안 기울인 노력을 스스로 배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최선을 다해야 찜찜한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을 테지요. 차사순 할머니도 "중간에 포기하면 안하느니만 못하지잉~" 말씀하셨으니까요. 저는 연습면허가 만료되는 날로 도로주행 시험을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시험 보는 학원의 주행영상을 유투브 영상을 무한으로 돌려봤어요. 영상 속 강사님의 깜빡이를 키는 스냅, 핸들을 돌리는 동작, 도로 양편을 살피는 고개, 심지어 어깨의 각도까지도 따라할 정도로요. 그리고 죽고싶지 않다는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서 시험 며칠 전 주행코스를 같이 돌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네비게이션처럼 코스를 달달 외우고 있는 저에게 놀라셨죠. 




학원에서 줬던 도로주행 검정 코스 지도.  이 약도, 매일 들고 다니면서 봤다. 지하철에서 볼 땐 사실 부끄럽긴 했다..중학생이 비웃은 적도 있다...




 두뇌는 준비가 끝나있었습니다. 문제는 손 끝. 그러니까 연습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감각'이었죠. 시험날 친구들은 살아돌아오라며 합격보단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역주행과 중앙선 이탈의 충격적인 경험때문에 저 또한 합격하겠다는 각오보단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주문을 되뇌었던게 사실입니다. 시험 대기실에서 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면서 빌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운전감각 없이 세상에 내보낸 저를 불쌍히 여겨, 하늘이 약간의 운을 보태주십사 하고요. 지금에 와선 그때의 기도를 담담히 회상하지만 그땐 정말.. 눈 꽉 감고 두 손까지 맞잠으며 빌었더랬죠.. 



그리고 그 결과는!

합격한 다음날 바로 쪼르르 달려가서 발급받았다! 이건 가보야, 가보. 내 성공기와 함께 대대손손 물려줄거야.



 

 



 하늘이 정말 저를 가엽게 여겼는지 모르겠어요. 주행 시험에서 전 두번째 순서를 배정 받았어요. 첫 응시자는 채점기기를 통해 랜덤으로 나온 B코스를 주행했습니다. B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 평이해 저는 속으로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빨간불에 미정지로 실격을 당하고 말았죠. 앞사람이 안타깝게 실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한층 더 위축됐습니다. 긴장한 채로 운전석에 앉아 코스 선정을 했는데! 똑같은 B코스가 나온게 아닙니까! 한결 마음을 놓게 됐어요. 첫번째 응시자가 실격하고 학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사님은 어떤 점들을 명심해야 하는지를 꼭꼭 짚어 설명해주셨으니까요. 그러나 악셀을 밟고 핸들을 돌리는 저의 몸은 머리로 알고 있는 계산들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실격 요소는 없는 저는 어찌어찌 학원으로 돌아와 차를 세웠습니다. 비상등을 키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강사님의 평가를 들었습니다. 속도유지에서 감점, 회전시 브레이크 사용으로 감점, 그 외에도 감점 대상은 아니지만 고쳐야 할 점들을 모조리 지적하셔서 제 고개는 점점 아래로 숙여졌습니다. '어느 학원에 찾아가 등록을 해야하지, 학과시험을 보려면 책을 다시 사야할까, 몇살 정도가 되어야 면허를 딸 수 있을까, 난 정말 운전 사주가 없는 걸까'..오만가지 생각이 다들때쯤 강사님은 길고 따끔한 지적을 한마디로 끝내셨습니다. 


 

그래도 합격 드릴게요.



 사실 이 합격 통보의 뉘앙스에 유쾌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저는 물불 가릴 처지가 못 되었으므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감사하다고 삼십번은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강사님이 그만 감격하시고 차에서 내리라고 하실 정도였죠. 눈물도 났지만 과장해서 말하진 않을게요. 그저 그 순간은 근래 들어 가장 큰 성취감과 운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찜찜한 느낌에도 관대한 마음으로 합격시켜주는 강사님을 시험관으로 만난 것도 행운일 테니까요. 타고나게 부족한 감각을 채우는 건 부단한 노력과 그 노력이 끌어들여준 약간의 운(친구들은 어마어마한 복이라고 하지만)이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그 말을 절절하게 느낀 순간이었어요. 2년 가까이 힘겨운 도전의 마침표를 찍은 순간이기도 하면서. 그러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설사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 하더라도 그 노력이 보상을 받게 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뻔하지만 그래서 진리이기도 한 이 말이 저의 좌충우돌 면허취득기의 교훈입니다. 


 덧. 면허 믿고 무작정 운전하진 않을게요! 그러니 안심해요, 서울의 도로! 

매거진의 이전글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지만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