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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13. 2019

이비자에서 보내는 편지

서른 셋의 내가 스물 다섯의 너에게


안녕.


 나는 이비자섬 해변 그늘 아래 누워 있어. 나른한 오후를 천천히 넘어가는 햇빛이 투명해. 에메랄드색 바다는 물결쳐 부서질 때마다 눈이 부시지. 해변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서로 교환하는 미소에는 적당한 무관심이 있어. 일도, 사람도, 성가신 고민도 다 잊은채 나는 텅 빈 사람이 되려고 해. 이 곳의 아름다움이 나를 그대로 통과해 흐르도록. 이 풍경에 걸맞은 존재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실감하게 되지. 나는  떠나왔다는 걸. 번잡한 일상을 떠나온 것처럼 매일의 송혜림과도 멀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생경하고 아름다운 이 섬의 여행자야.


 한국보다 9시간 느린 이곳에는 다행히 여름도 남아있어. 한국에선 놓친지도 몰랐던 여름의 정수를 나는 이곳에서 뒤늦게 누리게 됐단다. 매일 아침 수영복 위에 헐렁한 원피스를 걸치고 해변까지 술렁술렁 걸어나갔어. 종일 헤엄칠 각오로 썬크림은 생략하지. 까지껏 조금 타면 어때.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과 들끓는 더위를 올 여름에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는 걸. 해변에 도착하면 백사장 위에 스카프를 대충 깔고 자리를 만들어. 바다에 뛰어들어 지칠때까지 헤엄을 치지. 해변에 누워 몸을 말릴 때마다 읽었던 책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야. 책장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스카프 밖으로 삐죽 나온 젖은 발을 모래에 문지르다 생각했어. 나에게 편지를 써야지. 서른 셋의 나를 지금 이곳에 이르게 한 이유, 스물 다섯 나- 너에게 말이야.










 스물 다섯. 그때 너는 두번째 직장에서 일하며 두번째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었어. 졸업 후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지만 녹록치는 않았지. 너는 일에도 사랑에도 열심히 괴로워했어. 게다가 세계를 향한 촉수는 무척 예민해서, 주변의 모든 비극을 마치 네것처럼 껴안고 슬퍼했지. 취하는게 어떤 건지 알게 된 것도 그맘때였고 말이야. 밤새도록 춤을 추고 힘 풀린 다리로 친구들의 팔짱을 낀채 홍대 밤거리를 걷곤 했어. 휘청거리면서도 절대 고꾸라지는 법은 없었지. 우린 고통의 시기가 어서 지나가길 바랬지만 동시에 영원히 스물다섯으로 남아있고 싶어했어. 울고 불고 거부하고 반항하고 타협 같은 건 없는 고집센 우리가 미련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그러나 우리에게 그건 젊음의 특권이었어. 뻔뻔한 자신감이야말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여겼어.  


 너는 네가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었어. 만약 네가 곤경에 처한다면 그건 넘치는 열망과 의지때문일 거라고 믿었지. 네가 이비자에 오고 싶어했던 이유도 바로 그 젊음의 패기때문이었어. 너는 너의 에너지를 발산하기에 가장 화려한 무대로 이곳을 꿈꿨던 거야. 일탈의 파라다이스에서 너는 너의 젊음에 최고조로 취해보고 싶어했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매일 밤 춤을 추려 했지. 과거 따윈 상관없고 미래도 괘념치 않는 곳. 오직 즐겨야 하는 지금만이 존재하는 섬. 이비자라는 공간이 가진 화려하고도 허무한 상징을 네 청춘의 징표로 갖고 싶었던 거야.


 그러나 스물 다섯, 네가 꿈꾸던 이비자에 도착한 건 서른 셋의 나야. 8년의 세계는 자신감을 꺾고 씁쓸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주었어. 나는 무엇보다 지쳐있었어. 나만의 고유한 열정을 갖는 일조차 피곤하게 느껴지는 과포화의 일상. 의무와 책임들로 나를 잃어가고, 선량한 마음의 대가가 배신과 상처로 돌아와 내가 다치게 된다 할지라도,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 나.


여행 사진은 대부분 해변, 바다, 아름다운 풍경들.


 스물다섯의 너에게는 언제나 절대적인 기준 같은 것이 있었지. 이를 테면, 일의 방식, 사랑의 필요조건, 나의 편과 적을 가르는 경계 같은 것들. 넌 그것들에 충성했고, 조금만 어긋나더라도 견디지 못해했어. 그러나 나이를 먹으며 너의 세계는 확장되어가. 하나의 가치를 수호하기보다 수많은 다름을 포용하게 돼. 너를 지키기 위해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는 단단한 성벽을 쌓는게 아니라 쌓았던 성벽을 무너트리고 다시 쌓는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혜를 마침내 얻게 되지. 매순간 엄격하고 철저하게 최고의 선택을 내려야한다고 믿었던 너는, 보통의 삶에선 고작해야 최악을 면하는 형태로 살게된다는 걸 인정하고 말아.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건, 실제로는 내 선택을 책임지는 일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된다는 거지. 내 실수나 잘못 탓이 아닌데도 마치 이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선고되는 처벌들처럼.


그러므로 나의 생존전략은 더는 젊음의 패기가 될 수 없었어. 너는 열정과 의지가 없는 삶을 죽은 삶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어쩌면 순응도 저항의 일부가 아닐까. 혁명이 반드시 모든 것을 뒤엎고 뒤바꾸는 전면적인 게 아닌 것처럼,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 가장 소박하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야. 나는 이비자의 화려한 파티 대신, 눈부신 햇살 속에, 일렁이는 파도 속에, 어느 노천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내가 즐겨야하는 순간들을 찾았어. 이 곳의 무용한 시간들은 행복했어. 남들은 시시하다고 할지 몰라도 타인의 평판에 의해 시간의 가치가 매겨지는 건 아니잖아. 이국의 한적한 평화로움이 지친 나를 위로해줬으니 나는 더 바랄게 없었어.


 해변에 누워 책을 읽다 글을 쓰는 나는 분명 네가 바라던 이비자의 여행자 모습은 아니겠지. 네가 이비자에 대해 허황된 꿈을 꾸었다고 생각지 않아. 당시의 네가 품을 수 있던 정직한 환상이라고 생각해. 만약 스물 다섯의 시절로 돌아간다하더라도 난 같은 꿈을 꿀테지. 설익은 네가 품었던, 이루어질 수 없는 모든 꿈을 사랑해. 그때, 마음껏 어리고 미련해주어 고마워. 고맙다는 이 마음을, 너의 숙원을 다른 형태로 이루게 된 지금에서야 전해. 가끔 젊은 너-패기 넘치던 내가 그리워지곤 해. 이러니까 엄청 늙은 사람처럼 구는 것 같다, 그지? 아직도 인생의 애송이인데 말야. 몇년이 지나 나는 미래의 내게 똑같이 미련하다는 꾸중을 듣게되겠지. 어쩌겠어. 네가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 내가 그러하듯이-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우리로 살아갈 뿐. 최선을 다한 과거는 아쉬움이 남아도 후회하거나 미워하게 되진 않으니까. 스물 다섯의 시간이 나에게 그렇듯이 말이야.  


 그럼 이만 줄일게. 해가 지면 물이 차가워지니까 그전까지 부지런히 물장구를 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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