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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04. 2019

함께 할 때 세계는 확장된다

<영인과 나비>가 일깨우는 감각의 한계와 연합의 필요성


 팩토리2 갤러리 입구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장애인’도’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고 하는 입구를 보며 그동안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에 배제되었던 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이로 만든 목재 경사로는 정상인으로써 감지하지 못하는 타자의  불편을 상기시키는 첫번째 매개체였습니다. 시각예술은 볼 수 있는 자들만을 위한 영역일까요. 소외되었던 이들을 초청하여 예술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는 이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아픈 여성 과학자라는 가상의 존재 ‘영인’이 존재합니다. 그녀가 남긴 기록과 그녀가 천착해온 ‘끝의 입자’ 연구 결과들을 동료들이 재구성하는 형태이지요. 전시작가인 오로민경은 ‘타인 또는 사회가 규정하는 신체적 한계와 기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을 이곳에 풀어놓았다고 합니다.

 

 이 전시는 헤드셋으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된 설명은 온전한 시각으로 포착하는 작품들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작품도 어떤 감각을 통해 수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영인이 남긴 ‘끝의 입자’들은 여러 감각들의 연합을 요구합니다. 그건 그녀가 몰두했던 끝과 입자가 아주 작고 미묘한 것이란 사실과 이어집니다. 사물의 물질적 ‘끝’은 일반적으로 세계와 닿는 접촉면입니다. 또한 생명의 ‘끝’은 자신의 에너지를 거의 소진해 세계에 맞서 대항하기보다 세계의 힘들을 수용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끝의 입자’들은 세계와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지요. 그렇기에 전시가 작품을 통해 구현하는 감각도, 관객이 작품을 위해 도입해야 하는 감각도 다양해질 수 밖 에 없습니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전시 공간 자체가 자극을 수용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열린 시공이라는 사실입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움직임이 전시 이곳저곳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어둠의 상자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상자가 집중하는 에너지만큼 전시장에는 바람이 붑니다. 벽에 걸린 마른 잔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비의 날개가 펄럭이며 바닥에 비치는 빛의 파편들이 형태를 바꿉니다. 이 작품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볼 때 동시에 상자 밖 세계를 볼 수 없죠. 자신이 보지 않은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직접 체험한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순간, 타인의 존재는 훨씬 중요해집니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미묘한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던 과학자 영인. 동시에 병증으로 생생한 고통을 느끼고 신체가 쇠락해가며 감각의 한계를 알아갔던 연약한 개인 영인.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각자 한정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통합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건 그 한계를 알고 적극적으로 타인을 수용할 때입니다. 타인을 통해 세계에 대한 접촉면을 넓혀나갈 때 우리의 세계는 함께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인이 동료에게 남겼던 편지는 이 전시의 의미를 관통합니다.     


: 잊지마! 내가 어둠을 볼 때, 네가 먼지 한 톨을 느끼는 걸 보았다고 말해줄 때, 그리고 네가 흙 냄새를 맡았다고 알릴 때, 그때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가 커질 수 있어.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 전

 -일정: 2019.9.6.(금) ~ 2019.9.30.(월)

 -장소: 팩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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