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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23. 2019

‘동네친구’가 은유하는 요즘 시대의 관계성

틴더를 사용해본 소회

동네친구를 발견하는 새로운 방법! 틴더의 광고 메시지 (이미지 출처: 싱글라이트, 여성시대 기사)


 나는 한때 틴더를 했었다. 홍대 지하철의 전면 광고판에 쓰여진 캐치프라이즈가 날 낚아챘다. ‘동네 친구 만들자!’ 대학교때부터 자취를 시작한 나에게는 늘 근거리에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생때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연희동-홍대-상수로 이어진 거취는 나의 생활권에 큰 이동이 없었단걸 말해준다. 집 근처에 편히 불러낼 누군가가 있다는 건 외로움에 고립될 위험을 현저히 낮춰준다. 설사 빈번히 보지 않더라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커다란 안정감을 주니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 생활권 근방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적당한 신혼집을 찾아 서울 전역으로 흩어진 탓에 내게 동네 친구는 사라졌다. 그건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멀어진 우리 사이에는 심리적인 간극도 생겨났다. 이제 그들의 삶에는 나의 친구라는 순간보다 누군가의 아내, 남편, 며느리, 사위여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결혼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다보니 예전처럼 연락 하기 맘이 편치 않았다. '우리 만날래?' 쉽게 던지던 연락에 검열이 시작됐고, 보통 '언제 한번 보자' 정도의 인사만 나누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친구가 갖고 싶었다.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움을 느꼈다. 하지만 친구도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연애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타인과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도 다른 방식의 수고가 요구된다.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고, 성격과 취향이 잘 맞아야 한다(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함께 있을 때 편하고 즐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함께하는 시간, 공동의 추억이 필요하다. 그렇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게 참 쉽지 않다. 나이가 들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업무 외적으로 친밀한 사이가 될 법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급격히 줄어든다.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도 있거니와 겨우 얻은 시간에 차라리 휴식을 택하게 되는 만성적인 피로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교에서는 과활동은 물론, 동아리다, 타전공 수업이다, 학교 축제와 교류 행사가 넘쳐난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 학교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사회활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한다. 그러나 일단 직장인이 되고나면 평일 오후에 전사가 함께하는 야유회도 귀찮아진다. 모두가 곧 소진될 듯한 자기 자신을 챙기기에 급급하다보니 타인을 받아들일 여유는 점점 사라진다. 


 그렇게 친구가 갖고 싶으면서도 친구를 만들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틴더는 탐나는 창구였다. 피곤에 찌든 목요일 저녁 나는 홍대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바로 그 앱을 깔았다. 



'SWIPE LIFE'라니! 



 그러나 나는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동네 친구를 갖고 싶다는 나의 순진한 소망은 실제 틴더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곳에서 ‘친구’란 모든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일반명사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욕망은 어느 정도 스펙트럼이 있지만, 젊은 남녀가 모이는 채널에서 가장 지배적인 욕망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나는 매치회원을 ‘남녀 모두’로 설정해놓았지만 실제 여성과 매치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5km이내의 거리 설정도 무의미하게 지구 반바퀴 너머의 사람도 내게 도착했다. 매치된 사람들과의 대화 패턴도 다 비슷비슷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매우 드문 확률로 ‘친구’란 타이틀을 남용하지 않는 진실된 이들이 있었다!) 나는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곧이어 내 신상을 공개할 가치 없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얼굴도 노출하지 않았더니, 왠걸. 인기는 더 치솟았다. 그때서야 나는 틴더의 생태계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틴더가 기회의 장인건 맞다.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욕망을 가진 이들이, 비슷한 목적의식 하에 몰려드는 곳이니까. 기회가 많을 수록 성공할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산술적인 측면에서는 참이다. 그러나 성공은 담보하지 않는다. 더구나 퀄리티 있는 성공은. 무엇을 ‘성공’으로 볼 것이냐란 문제에도 갑론을박이 많겠지만. 가깝고 쉽고 편하고 즉흥적이고. 이 총체적인 편의성은 처음에만 좋을 뿐, 그 조건에 의지해 ‘친구’라는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어쩌면 그러한 조건이자 자질을 인간관계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것은 애초에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에 부적합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나는 실패했다. 처참히 실패한 나머지 계정을 삭제하고 앱을 지웠으며 인간관계와 그 관계에 대한 나의 욕구를 재정비했다. 여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엔 척박한 일상이지만 일정량의 노력과 애정 없이 거저 얻는 ‘소중한 존재’는 없다는 걸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내게 중요한 건 틴더의 가치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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