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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02. 2020

1일: 시작이 반이지 뭐!

힘 빼고 가볍게 기록을 할거야

1.

 지난 수요일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다녀왔다. (운좋게 '문화의 날'인 마지막주 수요일이라 관람료 30%를 할인받았다. 코로나 이후 전시나 공연 시장이 축소되고 나 또한 관람에 소극적이여서 이 혜택조차 잊고 있었다!) 본관에서는 <수화시학>전을, 수향산방에서는 <김환기, 성심>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수화시학>전은 김환기의 추상미술을 시詩세계를 통해 접근하는 시도였다. 그래서 작품과 그가 생전에 남긴 수필, 일기, 편지 등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글쟁이인 나는 작품만큼 그의 글도 좋았다. 그래서 다음날 냉큼 도서관으로 달려가 환기재단에서 출간한 에세이집을 찾았다. 김환기 에세이집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제목으로, 아내인 김향안 에세이집은 <월하(月下)의 마음>의 제목으로 나와있다. 미술관에서 조각처럼 인용된 구절들의 전문을 읽는 일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김환기와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김향안의 생을 엿보았으니 미술관을 찾아 다시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분명 달리 보이는 것도, 새롭게 발견하는 것도 많을 테지.


환기미술관은 전시관 내부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미술관 전경(위)과 전시 팜플렛 (아래)




2.

 전시를 보면서 김환기 부부의 사랑이 각별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그들의 글 군데군데에서도 서로에 대한 단단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을 살짝 옮겨본다.


너, 내 파리에 가서 살아 보다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난 서울서 살고 싶지가 않아. 서울이 싫은 것이 아니라, 좋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 다 버리고 전원으로 가고 싶어. 꽃 심고 푸성귀 뿌리고 짐승들과 새와 그렇게 하고 살고 싶어. 너는 찬성해 주겠지. 우리 둘이만을 위해서 우리들은 살고 싶고 노력하고 싶어. 이것이 나의 진실이야. 나는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야. 너도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고. 나 파리에 가면 그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지만 되도록이면 거기서 오래오래 아니 가능하다면 영주(永住)하고 싶어. 그러나 나 같은 마음 약한 예술가가 누구보다도 고국을 그리워할 거야. 허나 언젠가 불국사에서 느낀 것이지만, 애인이 있는 곳이 고향인 것 같아. 그 쓸쓸한 이방인으로서는 파리에서 혼자서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나 말이야. 나 혼자서는 ‘파리 영주’는 생각할 수도 없으려니와 추호도 자신이 없어. 허나 너와 더불어 있다면 난 가능할 것 같아. 같은 게 아니라 자신이 있어. 조국이 더 큰 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이기도 해. 애인과 조국은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한 것이 아닐까?


-김환기, 아내에게 주는 편지 중. 에세이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집'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언제든 돌아갈 안식처같은 집의 차원을 넘어서, 고향이고 고국으로 여길 수 있는 그 마음은 얼마나 애틋하고 확신에 찬 것일까. 나의 오랜 기원이자 평생 그치지 않을 그리움의 대상으로 사랑하는 일.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감정을 가진 이가 되고 싶다.


김환기가 집을 그린 드로잉에는 서로에게 꼬옥 기댄 자신과 아내의 실루엣도 있다. 




3.  서울은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비는 집중적으로 오다가 그치다를 반복했다. 늦은 오후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때 근처 마트에 가 장을 봤다. 모듬회를 사와 소주와 함께 홀짝. 서울시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바일 상품권으로 받았는데 이번달에 만료한다는 알림이 떴다. 그 덕에 8월은 오늘처럼 우리 동네에서 부지런히 맛있는 걸 사먹어야겠다고 다짐해보고. 






4. 하루하루가 스치듯 사라져버리기 전에 가볍게라도 붙잡아두자는게 8월의 목표였다. 그래서 브런치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닌 날들' 매거진을 새로 만들었고 매일의 기록을 남길 예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짐을 실천에 옮기게 됐는데, 바로 인스타 라이브. 밤 11시, 아무 예고 없이 시작한 무모한 도전에 고맙게도 많이들 찾아줬다. 이전 유투브 채널을 기획할 때 하고 싶었던 '책 읽어주기'에 대해서 사람들의 호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 일상의 사소한 얘기를 들려주기를 바래서 매일밤 허심탄회한 수다를 떨 계획! 8월의 31일을 이 작은 약속의 이행들로 꽉꽉 채워야지.


*인스타 라방이 궁금하신 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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