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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21. 2021

변화가 필요한 지점,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

나는 닷페이스(dotface)를 지지하는 닷페피플입니다

 


  어느덧 새해도 절반이 훌쩍 지났네요.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는 밤은 어느 신년의 경계보다 조용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을 앗아가버린 코로나는 연말 들어 더 위험한 수준이 되어버렸죠. 취식이 안되는 카페, 9시가 넘으면 손님을 받지 못하는 식당들, 5인 이상의 사적 모임 금지까지.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기념하는 장식들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맘때면 지겨워지곤 했던 캐롤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다가오는 날은 새로운 희망과 설렘의 이름이기 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과 우울의 연장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한결 같은 마음으로 변화를 바랐지만, 어느 누구도 그 실현을 장담할 수 없었어요. 2021년은 그렇게 왔습니다.



 만약 이런 무기력을 숙명처럼 매일 짊어지고 살아야한다면 어떨까요. 하루하루가 나의 한계를 정해놓은 벽의 존재를 실감하는 좌절이고, 벽에 맞서야하는 투쟁이라면.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벽들이 많습니다.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개념이 있죠. 조직 내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되는 암묵적인 차별의 관행을 뜻하는데, 이 ‘보이지 않는 장벽’(Invisible barrier)은 사실 사회 곳곳에 만연합니다. 차별적 장벽은 제도나 법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사회적 인식과 고정관념에서 비롯되기도 해요. 간호사나 소방공무원 등의 직업군은 마땅히 희생해야 한다고 믿거나, 성소수자의 인권은 ‘정상인’의 것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성범죄의 피해자는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는 식의 생각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장벽’은 장벽 너머 소수자 뿐만 아니라 장벽 안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위험합니다. 지금은 운좋게 다수에 있지만 언제든 장벽 밖으로 내몰릴 수 있는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다수/소수,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그 경계에 벽을 세우는 구조가 유지되는한요. 사실 사회는 이 장벽들로 우리가 약자들을 차별하고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장벽이 계속해서 견고해지고 벽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의 존재조차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되면, 이들의 고통은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 문제는 ‘그들’만의 것으로 남겨지게 돼요. 건강하게 함께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바운더리가 넓어져야 하고, 그들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앎’이겠죠.




 변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앎’을 위해 노력하는 미디어가 있습니다. 바로 닷페이스(.face)예요. 변화가 필요한 지점(dot)을 직면해야 한다는(face) 뜻을 담은 닷페이스는 사회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소수자는 약자가 아닌 ‘새로운 상식이 필요한 지점을 가리키는 사람들’이라는 닷페의 인식은 소중합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낡고 뒤처진 우리의 인식을 깨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이해시키도록 돕고 있으니까요. 닷페를 통해 저 역시 보지 못했던 현실의 그늘을 알게 됐고, 그 음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매번 착잡한 마음으로 분노하고, 가끔 같이 울기까지 했죠. 그리고 닷페가 말하는 변화를 함께 갈망하게 됐고요.



닷페이스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편견과 혐오를 깨트리고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나갑니다. 따라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죠. (출처:dotface.kr)


 웹다큐 형태의 논픽션 콘텐츠로 닷페가 건져 올린 현실들은 다양합니다. 제가 닷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플을 통해 이루어지는 미성년 성매매 문제를 다룬 ‘[H.I.M.] 미성년자 성매수자들을 만나다’라는 짧은 시리즈였어요. 일반적으로 이러한 취재가 피해자 증언 중심이었던 반면, 닷페는 피해자에게 말하게 하는, 그럼으로써 다시금 고통에 빠지게 하는 구조를 바꿔야한다고 보고, 매수를 시도하는 남성들을 추적하죠. 그들이 하는 뻔뻔한 말들을 보며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 시리즈에서 청소년 성매매 범죄가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 모두를 처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미성년에게는 보장되는 법적 권리가 없음에도 성매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무는 모순된 법. 이 법 자체가 청소년을 ‘피해자’로 볼 수 없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거죠.   




H.I.M.시리즈 예고편. 외국에서는 청소년 ‘성매매’에 한해 성매매 대신 ‘성적 학대’, 혹은 ‘성착취’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단어에서조차 우리의 뒤처진 인식이 드러나요.


 범죄를 피해가 아닌 가해의 구도에서 규정하고 해결하려는 관점의 변화. 그럼으로써 피해자에게 전가되던 피해 입증의 고통, 자기 노출의 부담, 사회적 낙인과 편견에 오롯한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문제를 바꾸는데 닷페는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올해 N번방을 필두로 한 디지털 성착취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재판 이후의 피해자의 삶에는 무심한 법과 제도의 빈자리를, 일상 회복을 위한 피해자 후원 프로젝트로 채우는 시도도 했고요. 낙태죄의 문제를 다룬 ‘세탁소의 여자들’ 시리즈나 장애노인, 탈-시설 혹은 탈-보호제도의 주체들을 다룬 컨텐츠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간호사와 소방공무원이 처한 열악한 현실과 왜곡된 인식을 다룬 ‘간호사는 살고 살리고 싶다’나 ‘우리는 할 말이 아주 많습니다’에 담긴 목소리는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닷페는 우리 곁에 있지만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존재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죠. 또 젠더의 다양한 지향성과 취향을 존중하고 제도권 안에서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운동의 일선에는 언제나 닷페가 있었습니다. (닷페 조소담 대표는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상’의 신진여성문화인으로 수상했어요. 짝짝!) 그리고 올해는 분리수거 배출 등의 기후 문제도 깊숙이 다루면서 저의 안일함을 반성하고 일상의 습관과 소비패턴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줬죠.  


닷페 유투브채널에서 모든 컨텐츠 시청 가능! 쌓아온 컨텐츠 하나하나가 귀중한 목소리입니다. https://www.youtube.com/c/facespeakawake/featured


 이러니 제가 어떻게 닷페와 함께 걷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는 닷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이들의 실천을 지지하는 닷페피플입니다. 지난해부터 정기적인 후원금을 내며 응원하고 있죠. 여러 사회 단체에 종종 기부를 해왔지만, 정식 후원자로 등록한 건 닷페가 처음이예요. 그만큼 닷페가 지향하는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어떻게든 힘을 보태려는 마음이 강한 거겠죠. 닷페피플이 되면 격주마다 PD노트를 읽을 수 있는데요, PD들의 진솔한 말들- 컨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편집하면서 가졌던 고민과 다양한 고충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컨텐츠 그 자체 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 컨텐츠의 안과 밖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우편으로 받아보는 닷페레터도 드문 설렘 중 하나였는데, 올해는 중단된다고 하니 조금은 아쉽지만. 늘 닷페피플에게 더 좋은 사유로 보답하려는 닷페의 마음을 알기에, 저는 올해도 계속 함께 합니다. 깜짝 닷페 라이브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 등의 혜택이 참 많거든요.  



 더 많은 분들이 닷페를 알고, 더 많은 분들이 닷페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힘이 모여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바운더리가 넓어지고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도록요. 새해를 맞아 닷페는 ‘우리가 살아갈 2021년은 달라야 하니까’의 문구를 내걸고 닷페피플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래 링크를 따라 가서 닷페의 그간 활동들과 앞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을 살펴보셨으면 좋겠어요. 닷페피플이 되진 않더라도 닷페가 전하는 목소리들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우리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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