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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17. 2021

내가 나에게, 다정한 혼잣말의 힘

혼자 사니 점점 혼잣말이 늡니다. 처음엔 감탄이나 탄식 같은 외마디 소리들이었지만 이젠 완성된 문장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어요.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무얼까, 생각해보니 ‘괜찮아’, 혹은 ‘잘했어’ 같네요.  저 자신을 다독여야 하는 순간이 많나봅니다. 할 일을 하다 막혔을 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을 때, 그리 넓지도 않은 거실의 테이블 주변을 빙빙 돌며 중얼거려요.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후회나 불안이 밀려오면 넌 최선을 다했어, 어쩔 수 없는 일인걸, 네 잘못이 아냐, 라고 위로하고. 마치 주술을 거는 것처럼 되풀이해서 말하다 보면 그 말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마음의 조각들을 단단히 엮어줍니다. 정말로, 효과가 있어요. 



한때는 제게 필요한 말을 꼭 상대방을 통해 들어야했습니다. 타인을 경유해야만 그 말이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의 존재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었으니까요. ‘괜찮을거야’ 라든가 ‘참 잘했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참 바보 같은 수고였죠. 사실 내가 어떤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리고 결과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해 답을 아는 건 자기 자신이잖아요.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을 외면한 채 외부로부터의 평가에 집착하면 결국 남는 것은 허울 뿐인 나, 나 없는 나일 뿐입니다. 



새해 들어 편지를 많이 썼어요. 크리스마스와 신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카드를 쓰는 건 제 오래된 즐거움 중 하나거든요. 올해는 인스타로 카드를 받고 싶다고 신청하신 분들께도 편지를 썼구요. 일면식 없는 SNS 인연들에게까지 저마다의 위로와 응원의 말을 쓰면서 문득 깨닫게 되었어요. 아, 나 이들에게 내가 듣고 싶던 말을 하고 있구나- 내가 건네는 말들은 결국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던 말이구나, 하구요. 평범한 행복들을 포기해야 했던 지난해의 무기력을 잘 견뎌냈다는 것, 뚜렷한 목표와 확실한 성취가 없이 방황하는 시간들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란 것, 건강한 삶과 용기를 응원한다는 것. 그래서 40통이 넘는 편지를 쓰는 일이 괜한 수고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되려 저를 마주하게 되는 소중한 한 장 한 장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다정하지 못하는 것만큼 가혹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지난달 북클럽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지금 자신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 무엇이냐고요. 질문은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러한 관심의 바탕은 애정입니다. 특별한 용건 없이 안부를 묻는 이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들 하잖아요. 우리는 갈수록 순수한 애정을 자신에게 쏟는 일에 무심해지는 것 같아요. 타인에게 따뜻한 사람이고자 하는 만큼 저를 따뜻하게 품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는 요즘, 자주 제게 묻습니다. 지금 네 마음은 어떤지, 무엇이 욕심나고 어떤 이유로 초조해하는지, 누가 보고싶고 어떤 기억이 맘에 걸리는지, 그런 것들을 묻게 되면 어떤 말이 제게 필요한지도 알게 돼요. 그때가 제게 말을 건네야 할 때죠. 타인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 필요한 말을 제일 먼저 해주는 '나'가 되고 싶어요. 내 뜻이 이해받지 못하고 감정이 부정 당하는 외로운 순간에도 단 한명의 절대적인 지지자 '나'가 있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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