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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15. 2021

증언집의 전형성을 탈피한 윤리적 시도

<영미 지니 윤선 :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아마 저의 브런치 글을 꾸준히 읽어오신 분이라면, 혹은 브런치북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위해>를 알고 계신 분이라면 제가 증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거예요. 특히 고통스럽고 잊고 싶은 과거에 대한 말하기로서의 증언 말입니다. 증언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묻고 어떤 자세로 들을 것이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말을 ‘세상에 어떻게 들려줄 것이냐’의 문제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해요.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만큼 강렬한 것은 없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이들의 말을 직접 듣기는 어렵기 때문이니까요. 녹음된 음성이나 인터뷰 영상을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최소한의 편집이 가해질 수 밖에 없고, 이들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영화나 문학 또한 왜곡의 위험을 갖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증언의 내용이나 증언자의 고유성뿐만 아니라 그 증언을 담는 매체에 대한 성격에 따라서도 ‘전달’에 대한 고민은 달라집니다. 



 이전 글을 통해 다큐, 문학, 연극라는 장르적 특징 속에서 증언이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 지를 소개해왔었는데요. 이번에는 보다 직접적인 기록 매체로 ‘증언집’이 어떠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고 싶어요. <영미 지니 윤선 :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책은 평택 기지촌 여성 구술집으로 영미, 지니, 윤선 세 명의 ‘이모’들의 구술을 담고 있습니다. ‘증언집’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말이 정확한 증언으로 기능하기보다 그러지 못한 말로 미끄러지기 때문입니다. 기지촌의 경험을 말할 때마다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고 일부분만 강조되기도 합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은 외면하고 침묵해버리거나 강하게 거부하기도 하죠. 


이모와 지은이들이 함께 대화하는 현장의 옮김(오른쪽 위), 이모가 있는 공간을 담는 카메라(왼쪽 아래), 해제의 일부(오른쪽 아래).



 또 이 책에는 일방적인 증언자로 이모들만 존재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이모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모의 말에 웃고, 괴로워하고, 놀라하는 지은이 이경빈, 이은진, 전민주가 함께 있습니다. 본문에 ㅇ,ㅇ,ㅁ 로 표기되는 이들의 질문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절대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이전에 해왔던 인터뷰나 증언들이 그들이 말하기 싫은 내용들을 끄집어냈던 권위적인 형태였다면, 이들은 이모에게 가능한 한 ‘원하는’ 말하기로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영미, 지니, 윤선의 입말 그대로를 읽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화제가 별안간 바뀌거나 주어나 술어가 불분명할 때도 많아 따라잡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증언을 향하다 방황하고 실패하는 말들이 분명 더 많은 함의를 지닐 것 입니다. 일반적인 증언집은 가독성을 위해 문어체로 윤색하고 내용을 시간순, 인과순으로 편집하곤 합니다. 또 그 증언을 함께 만들어간 질문자의 존재도 삭제하지요. 하지만 <영미 지니 윤선>에서는 기존의 증언집이 탈락시켜온, 증언 현장의 날 것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페이지 곳곳에 들어간 사진은 말하는 이모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고 그 주변을 담으며, QR코드를 따라가면 이모의 말들을 다른 방식으로 듣게 되는 영상작품들이 있고요.



이모의 인터뷰마다 제공하는 QR코드를 따라가면 볼 수 있는 영상들. 조각조각난 프레임의 증언 순간을 담거나 이모의 사랑 이야기를 아역들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단편도 있다.  


 외화 벌이의 역군으로 치켜세워졌지만 ‘양공주’로 멸시 받고, 미군에게 희생당한 ‘민족의 딸’이면서도 관리되고 정화되어야 할 ‘위안부’로 취급되어 온 역사는 사회정치적 변화의 굴곡 속에서 그들은 줄곧 소외받아온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후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적 폭력과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피해자다움’이라는 규범이 이들을 재단하고 말죠. ‘그들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닌가? 돈을 번게 아닌가? 말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사실인가?’ 책의 저자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도 아니고 절대적인 규범도 아닌 그 사이의 자리에 놓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절대적인 규범에 의해 재단되는 증언이 아니라 여러 관점의 의견들 중 하나로 말이죠. 그래서 이모[In My Opinion]로써의 듣기는 피해자 여성을 대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어긋나고 혹은 ‘틀렸을’ 때조차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여깁니다.  



 추천사에서 양현아 교수는 이 책이 “양공주, 성매매 여성, 국가 폭력의 피해자, 노인 여성, 그리고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라는 다면성의 어느 하나도 구석에 밀쳐놓지 않는다”고 추천합니다. “어떤 대명사로만 호명되던 기지촌 여성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과 연결”이라고 임민욱 미술가는 평가하고 있고요. 이미지문화연구자인 이나라는 해제를 통해 이모들과 저자들 사이의 지식과 체험, 입장과 이해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모들의 말과 저자들의 반응에서 때로 차이가 선명해지는 순간 괄호가 쳐진다고 설명하는데요. 이때 괄호는 차이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억하고 있는 이들, 함께 같은 것을 감각하는 이들이 ‘공동체’로 묶이는 순간”인 셈입니다. “괄호가 생겨났다 사라지는 무수한 관계의 과정”을 통해 세대를 초월한 공동체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 책은 어떻게 증언을 들을 것이냐, 그리고 또한 어떻게 그들의 증언을 전달할 것이냐란 문제에 의미있는 대답을 던지는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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