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May 25. 2017

3.네 자리를 미안해하지마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지에서의 첫 식사



 문화과학궁전 주변을 둘러보고 구시가로 가는 길이었다. 배가 고프고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도 싶었다. 가는 길에 폴란드에서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크레페 식당 Manekin이 있었다. (http://manekin.pl/) 채소나 고기 등의 속재료를 푸짐하게넣은 크레페 메뉴들이 많은데, 늘 대기시간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내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는 12시가 되기 조금 전으로, 안은 한산했다. 점원은 자리가 많으니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내부가 조금 어두웠다. 나는 조금이라도 햇빛을 쬐고 싶은 마음에 창가 테이블을 선택했다. 4인용 테이블이어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분홍 카네이션 화병과 작은 양초가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다.

 

 메뉴가 다양해 점원에게 설명을 꽤 길게 들었다. 긴 머리를 위로 꽉 묶은 발랄한 여자 점원은 내 질문이 길어지자 조금 귀찮아하는 눈치였지만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고른 메뉴를 의외라고 여겼지만, 요리는 맛있었다. 


 요리가 나온 12시를 기점으로 손님이 갑자기 늘어났다. 매장 안 40여개 정도되는 테이블이 순식간에 찼고 대기열이 생겼다. 2인 테이블이 대부분인 식당에서 나 혼자 4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함께 온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따로 앉는 광경이 더러 보였다. 비 내리는 식당 밖까지 우산을 쓰고 기다리는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내가 이곳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파스타는 아직 반 이상 남아있었다. 나는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남자 직원을 불러 세워 말했다.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네요. 2인 테이블이 나면 거기로 자리를 옮기고 싶어요.”


 그는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자리를 옮기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대답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어느 2인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이 계산을 하고 나갔고, 나는 자리를 옮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주문을 받았던 여직원이 급히 달려왔다.

 

    “자리 옮길 필요 없어요. 여기 계속 앉아서 식사해요.”     


    “난 정말 괜찮아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잖아요. 내가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해서 그래요.”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큰 테이블이든 작은 테이블이든 당신이 앉은 자리는 끝까지 당신의 공간이에요. 아무도 당신의 선택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고, 당신도 그 선택에 대해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여긴 당신의 자리예요. 끝까지 편하게 식사해주세요.”


 그녀의 말이 안절부절못하던 나의 마음을 달랬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의 배려가 도리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가 지나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게 아니었을까, 돌이켜보았다. 내가 있기로 선택한 이 곳은 내가 있는 것이 마땅한 공간이라는 말.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서 걷게 될 여행의 시작에서 그녀의 말은 분명 용기가 되었다. 



창가의 4인 테이블. 적양파와 말린토마토, 체다치즈가 들어가고 루꼴라가 얹어진 파스타. 

음식의 맛도, 점원의 말도 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