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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01. 2017

라스베가스 Las Vegas

-6일, 그리고 단 하나의 지배적인 감상 

 우리 가족은 라스베가스에서 웨스트게이트 호텔 (WestgateLas Vegas Resort & Casino)에서 5박을 했다. 1969년에 세워진 호텔로 70년대에 힐튼 그룹에 팔린 이후로 Las Vegas Hilton 의 이름이었으나 2년 전,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2960여개의 객실을 갖춘 대형 호텔로, 호텔 앞에는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거대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웨스트게이트호텔은 스트립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며, 모노레일에서 동편 종착점의 전 정거장이다. 모노레일의 역 이름이라고 해도 메인 스트립에서 외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호텔에서는 세월이 느껴진다. 호텔 곳곳에서 노후의 징후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덧댄 흔적이 보인다. 과거의 화려함을 조성하던 샹들리에는 먼지가 쌓여 청소부들의 골치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고딕 기둥과 창의 모자이크 장식은 조금 측은해 보였다. 객실의높은 침대와 모서리가 닳은 검은 가구들, 화려한 문양의 전등들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인정하기 싫은 사실에 꿋꿋하게 맞서 버티고 서있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 늙었다는 사실. 


 공간에는 그곳을 동경하거나 그곳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웨스트게이트 호텔은 그 후자였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더러 보이긴 했으나 로비 카지노에는 자국 노인들이 월등히 많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이 굽고 굳어 더는 펼 수 없고, 무릎이 좋지 않아 지팡이나 전동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노인들이 슬롯머신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코인으로 불룩한 주머니 대신 충전식으로 사용하는 카지노 전용카드를 낯설어했다. 카지노 안쪽의 그늘져 어두운 머신 하나에 자리를 잡고 카드를 꽂은 뒤, 버튼을 누른다. 계속해서, 누른다. 알고리즘에 의해 주어지는 작고 드문 기쁨에 조금씩 희망을 부풀리면서, 그것이 거대한 잃음으로 향하는 길 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한때는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제는 소소한 리노베이션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3성급 호텔. 그리고 그 곳에 모여드는 인생에 실패했거나, 참패하지 않아도 그럴싸한 성공도 거두지 못한 씁쓸한 사람들. 낡고 오래된 공간과 그 안에 모인 비슷한 군상. 침울하지만 분노하지 않고, 깔끔하지만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 그런 오묘한 이미지가 호텔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게 라스베가스는 그런 도시였다. 스트립 중심가는 신식호텔과 트렌디한 레스토랑, 화려한 조명과 쇼들이 젊은 이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화려한 시절, 화창한 순간을 한때 가져보지 못한 것이 있기나 할까. 라스베가스는 과장된 화려함이 점철되어 있었고, 나는 그래서 자꾸그 이후를 내다보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들은 시간의 자비 없는 전진에 뒤로 밀려나고, 낡고, 늙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그리고 라스베가스에서 내가 보았던 허무함의 형제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그 그림 앞에서 구석진 슬롯머신에 앉은 굽은 등의 노인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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