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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22. 2017

10. 함께 살아가는 단순한 방식

폴란드 바르샤바 > 크라쿠프

내가 탔던 빨간색 Polski 버스, 14번 플랫폼.


 크라쿠프로 가기 위해 셋째 날 아침에 탄 폴스키 버스는 2층버스였다. 버스의 최종 종착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캐리어 가방을 짐칸에 싣고 출력해온 이티켓으로 버스에 탑승했다. 내 뒤로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배낭여행객들이었다. 일찍 탑승한 축에 속했던 나는 1층의 왼쪽 열 가장 뒷줄, 창문석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 바로 옆은 출입문이었는데, 그곳에서 직원이 승객들의 예약번호를 확인하며 한 명씩 탑승시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버스에 오르는 승객을 찬찬히 바라봤다. 그 중 내가 시선과 마음을 주었던 누군가가 있었다.  


 중년의 여성이 그녀 체구의 반쯤 되어 보이는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시각 장애인이었고, 개는 그녀의 안내견이었다. 아이는 그녀보다 앞서 버스에 앞다리를 올렸다. 자신만 믿고 들어가면 된다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아침 산책에 신이 난 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11개의 예약번호를 대조하느라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직원도 그들 차례에서는 몸을 숙여 아이의 턱을 유쾌하게 긁어주었다. 


 장애인석은 검표가 이뤄지는 탑승구 바로 앞줄이었다.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보이는 건너편 자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예약번호를 확인 받고 오른팔로 장애인석의 등받이를 안은 후 3/4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깔끔하게 자리에 앉았다. 숙련된 모습이었다. 그녀가 왼손에 쥐고 있던 목줄 때문에 아이도 자연스럽게 장애인석 가까이로 당겨졌다. 


 그러나 아이는 좌석 안으로 끌려가지 않고 복도 중간에 엉거주춤 앉아버렸다. 그녀는 목줄을 몇 번 더 당겼다. 아이는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복도 바깥에서 서성였다.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아주 조용히 개의 이름을 불렀다.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s 발음과 k 발음이 들렸다. 아이는 그녀가 반복해서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불안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좌석 안 공간으로 큰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이는 그 좁은 공간에서 그녀의 무릎 위에 턱을 걸치고 앉았다. 꼭 그녀의 다리에 몸을 묻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듯 무어라 낮게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이는 가끔 천장을 올려다 보기도 했지만 줄곧 크고 검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시선을 보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몸이 포개진 다리에서 체온과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들은 괜찮다는 확신을 갖기에.


  아름다웠다. 어느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동시에 또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함께 삶’의 균형이 아닐까. 우리는, 강점은 보통 애매모호하게 규정되는 반면, 약점은 언제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존재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특성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받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단순하다. 


  지금 곁에 그 사람을 본다. 무엇이 필요한지 느껸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준다.

 그건 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고, 든든한 한 끼 식사일 수도 있으며,  따듯한 미소와 포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차는 1시간을 달려 어느 소도시의 정류장에 정차했고, 그들은 거기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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