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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 봄, 시작

새로운 한해는 1월부터 시작되지만, 나는 어쩐지 3월이 일년이 시작하는 달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월과 2월은 지난 해의 연장 같습니다. 묵은 해가 아직 떠나지 못하고 그림자를 드리운 미련의 달 말이죠. 계속되는 추위 때문인지 또는 계절이 가진 음울한 느낌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겨울의 두 달은, 희망을 가득 품은 모습이기보다 다가 올 희망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뒷모습 같아 보입니다. 


2월이 채 가기 전에, 정오의 하늘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햇빛을 뿜어냈습니다. 햇빛은 펄펄 끓는 것처럼 사납게 넘실댔습니다. 봄이 벅찬 마음으로 달려오고 있던 모양입니다. 마치 그를 간절히 기다렸던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한낮의 세상에 연한 노란빛이 감돌기 시작하면 나는 봄의 시작을 봅니다. 빛의 온기가 세상의 채도를 한도 올려줍니다. 움츠렸던 세계의 이쪽 저쪽에서 기지개를 켜는 기척이 느껴집니다. 두려움 때문에 사물들은 겨울의 허물을 한번에 벗어내지 못하지만, 봄빛은 너그럽게 기다립니다. 모두가 완연한 봄 속에 있게 되기까지.  


겨울의 삭은 한기를 털어내기 위해 3월이 오면 나는 대청소를 합니다. 옷들은 세탁하여 봄볕에 한동안 널어둡니다. 다 마른 옷은 차곡하게 개어 옷상자에 넣습니다. 겨울 극세사 이불도 오래 불려 깨끗하게 빨고, 코트와 패딩도 곱게 세탁소에서 찾아온 비닐포장 그대로 뉘어둡니다. 집 가장 구석에서 이들은 두 계절을 기다리게 됩니다. 

청소를 하다 보면 겨우내 손대지 않았던 옷과 물건들을 알게 됩니다. 시선을 주지 않았다는 건, 나와의 인연이 다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나는 그것들을 가장 깨끗한 상태로 포장해 기증을 합니다. 계절의 끝에서는 덜어내고 버리고 잊게 됩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계절이 제대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오늘 나는 하루 종일 봄 맞이 준비에 힘을 다 쏟고, 마침내 반질반질하게 닦은 거실 바닥에 앉았습니다. 현관문 유리창을 통과한 하오의 빛이 집 안에 천천히 포개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사방이 더 큰 건물들로 둘러 싸여 늘 햇빛이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미약한 빛이나마 깃들어주는 반가운 장면에 나는 정말 봄이다,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내 삶에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봄은 그래서 멋진 계절입니다. 사계 중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계절이고, 그만큼 버려야 할 것도 맞이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배웅과 마중이 교차하며 분주해지는 시간. 어렸을 땐 봄을 모든 것이 시작되는 탄생의 계절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시작이 어떤 식의 종결이 없이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직은 찬바람에 점퍼 앞섬을 여미고 있습니다. 겨울은 완전히 간 것이 아니고, 봄이 아주 온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이 계절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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