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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02. 2017

우리의 불완전한 공감의 능력

보잘것 없는 짐작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땅에서 두 발을 동시에 떼고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된 건 최근의 일입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탈 기회가 없었던 나는 다 커서야 자전거 타기에 도전했습니다. 부끄럽게도 번번히 실패했고요. 넘어질 거라는 두려움이 너무 커진 나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10년 동안 실패한 과업을 이제야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답은 일단 밟고 나아가는데 있었습니다. 핸들이 비틀거리고 자체가 기우뚱거려도 페달을 돌려 속력이 붙으면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단순한 깨달음-어쨌든 앞으로 나가야 한다-이 자전거 만학도의 페달을 계속해서 돌게 만들고 있습니다. 


 페달을 돌리는 데 성공한 영광적인 순간 이후로, 달리는 감각을 잃지 않게 위해 매일 자전거를 탔습니다. 탈 때마다 조금 더 멀리, 언제나 새로운 목적지로 향했지요. 다양한 길 위를 달리며 알게 됐습니다. 내가 걷던 인도에도 내가 지나던 차도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다는 사실을요. 길 위나 주변을 여러 번 지나면서도 무관심 속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존재였지요. 더불어 전용도로의 현실도 알게 됐습니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도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넓은 인도 대신 전용도로 위를 걷는 보행자도 많았고, 무섭게 그 도로를 질주하는 자가용은 더 많았습니다.


 

 친구의 6개월 된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를 나설 때였습니다. 길을 건너 인도에 오르는데 유모차가 덜컥, 무언가에 걸려 멈췄습니다. 인도의 턱이 너무 높았던 것입니다. 친구는 말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걸어보기 전까지 아파트 단지 내 인도 턱이 높은 줄 몰랐었다고요. 자전거를 탈 수 없던 나에게 자전거 전용도로나, 아기를 낳기 전 친구에게 인도의 턱은 비슷한 것이었겠지요. 처지가 바뀌고 관심사가 변하면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나면서 얻어지는 새로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이미 일상에 존재했지만 마음을 둔 적 없어 보이지 않던 것들을 뒤늦게 발견하면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타인을 이해하는 시작점이며, 공감의 기반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불완전한 짐작에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타인이 되는 것도,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하니까요.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제대로 헤아리지 못합니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짐작뿐인 앎은 어쩌면 보잘것 없는 것이겠지요.   


 짐작의 허점을 메우는 건 어찌됐건 노력입니다. 나와는 다른 상황, 다른 생각, 다른 믿음의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이고요.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텍스트를 읽든, 영상으로 접하든지 간에 익숙한 나에게서 튕겨 나와 그들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보는 것. 그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닫히고 굳기 쉬운 나의 마음이 타인을 짐작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열려 있도록 준비해놓는 것이지요. 타인을 짐작하는 능력은 가정과 상상과는 조금 다른 차원입니다. 내가 이미 가진 ‘다른 처지’의 재료를 최대한 비슷하게 버무릴수 있는 편집의 능력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평소에 많은 재료들을 모아두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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