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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12. 2017

데스밸리 Death Valley

-끈질긴 집념과 인내의 풍경

 간밤에 렌트한 차를 몰고 우리 가족은 라스베가스 북서쪽으로 달렸다. 운전대는 아빠가 잡으셨고,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은 동생이 보조석에 앉았다. 뒷좌석에는 엄마와 내가 커피와 간식거리, 여벌 옷 같은 짐들과 함께였다. 


 라스베가스 도시의 특성상 출근길의 체증은 없었다. 도심의 도로를 손쉽게 벗어나 고속도로에 금방 접어들었다. 그곳의 고속도로는 내가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길이었다. 직선으로 언제까지고 뻗어나갈 것 같은 길. 눈앞의 세상은 직선의 도로로 인해 정확하게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하나의 소실점 때문인지 완연한 평면이었다. 차의 덜컹거림이 없었다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데스밸리로 향하는 길의 풍경은 단순하고 지루하여 길 끝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 힘들었다. 


 데스밸리 국립공원에 가까워질수록 퇴적암의 기이한 형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암벽의 표면에는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언덕의 능선들은 너무나 유연하게 보여 물질성과는 상관없이 출렁이는 듯 보였다. 차가 나아가면서 암벽의 파도를 뒤로 넘실거리며 멀어졌다. 나는 딱딱히 굳어진 형체가 생동하는 모습을 착시인 줄 알면서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데스밸리로 향하는 쭉 뻗은 직선의 길. 








 데스밸리 Death Valley National Park는 북아메리카에서의 가장 넓고 가장 뜨거운 국립공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 약 210km 길이로 뻗어있는 공원은, 쉽게 말해 분지형태인 사막 협곡이다. 계곡은 최고 11,049 피트 높이의 산들에 둘러 쌓여 있으나 공원 내에는 해수면보다 282피트가 낮은 소금사막도 존재한다. 다양한 지형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극단적인 형태의 지면이 혼재하는 공원이 된 것이다. 


 나는 딱 한번 사막을 가본 적이 있다. 열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여행한 이집트에서였다. 우리 가족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모래사막에서 하룻밤 캠핑을 했다. 사막의 지평선은 고저가 거의 없었다. 단조로운 지평선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는 모래 언덕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비워졌다. 모래를 한줌 집으면 손가락 틈으로 주르르 흘러내리던 것처럼, 덧없는 풍경이었다랄까. 집념과 의지는 읽을 수 없는 허무한 대지. 그곳에서는 사막의 풍경처럼 가장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데스밸리는 이집트 모래 사막에서 받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초록의 싱싱함이 느껴지지 않는 황폐한 풍경이었으나 거기에는 사막에는 없던 어떤 척박한 생명력이 있었다. 세월에 풍화되고 남은 잔여물들이 아닌, 세월의 풍화에 맞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것들의 의지 같은 것. 그렇게 어떻게든 버텨왔던 암석들이 이룬 협곡에, 틈 사이로 들어오는 뜨거운 태양빛을 맞고 서 있으면, 자연의 영속성에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1913년 이 곳은 섭씨 57도(화씨134도)까지 올라갔는데, 이 온도는 지표면에서 측정된 가장 높은 온도라고 한다. 한여름에는 평균 49도를 유지하고 비는 드물게 내린다. 그러나 고도가 높은 지대에는 가을부터 봄 동안 켜켜이 눈이 쌓이고, 계곡의 고지대에는 눈이 녹으며 생명이 움튼다. 모든 씨가 말라버린 황폐한 지대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우리가족은 데스밸리의 첫 지점으로 Dante’s View를 선택해 차를 몰았다. 해발 1669m 높이에 위치한 그곳에서는 데스밸리의 장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데스밸리의 테라스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Dante’s View’가 <신곡>을 쓴 이탈리아 작가 Dante Alighieri의 이름을 딴 걸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정말 그러했다. 데스밸리에서 채굴 사업을 진행했던 광부들이 데스밸리의 전경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다고 인정하며 이 곳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어디서도 자세한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마도 지옥의 일곱가지형상을 생생히 그려낸 Dante처럼, 데스밸리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척 멋진 명명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 Dante’s View로 올라가는 길은 폐쇄되어 있었다. 날이 풀리면서 눈이 한꺼번에 녹는 바람에 도로 위로 물이 범람하고 길 군데 군데가 망가졌다는 게 폐쇄된 길 앞을 지키고 있던 요원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아쉬움으로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방향을 틀어야 했다.

 

 대신 우리는 Zabriskie Point에서 극적인 순간에 정지되어 있는 듯한 협곡의 일렁임을 보았다. Artist's Drive 를 따라 거칠고 마른 암벽의 병풍을 꾸불꾸불 헤쳐 내려오고, 팔레트처럼 다채롭고 영롱한 색으로 얼룩진 Artist's Palette을 보았다. 차에서 내려 협곡 사이의 길을 짧게 걸으면서 척박함을 온 몸으로 느끼기도 하고. 과거 바다였던 곳이 고온으로 모두 증발하고 소금바닥만이 남은 Bad Water Basin을 걸을 때는 어쩐지 세기말의 시간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간혹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광은 나의 존재와 생을 덧없고 하찮게 느껴지게 만든다. 그러나 데스밸리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겸허하고 겸손하게 나를 돌이켜볼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이 메마른 협곡을 걸었던 이를 생각해보았다. 이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전에, 길을 잃어 혹은 길을 찾기위해 이곳으로 접어들었을 어떤 사람. 그의 기구한 운명과 기어코 이 뜨겁고 메마른 땅을 가로질렀을 그의 의지가 궁금해졌다. 있다면, 있었다면.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신선한 생명력은 박제되고 집념과 인내만 남겨진 이 곳의 풍경과 비슷한 얼굴이었을까.  









데스밸리 국립공원 내 도로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때문에 여행을 떠나기 전 도로의 개폐 소식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 공식 홈페이지에서실시간 공지가 잘 되고 있습니다. 공원 내에서는 시즌에 따라 협곡 트래킹과 가이드 투어, 캠핑 등이 이루어집니다. 관련 정보 또한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있으니 참고하시어 멋진 체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데스밸리 국립공원 공식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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