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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14. 2017

Diane Arbus: In The Beginning

-샌프란시스코 MOMA  특별전

 샌프란시스코의 파이낸셜 지구에서 남쪽으로, 빽빽한 빌딩숲 사이를 걷다 보면 초록의 예르나 부에나 가든스 Yerba Buena Gardens가 나타납니다. 잔디밭의 아담한 크기는 도심의 숨구멍으로 느껴지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공원 한 쪽에는 소박한 물줄기의 인공 폭포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이 구조물 전체가 마틴 루터 킹의 작은 기념관라고 느껴졌습니다. 폭포수 뒤로 걸어 들어가면 세계 각국으로 번역된 그의 연설문을 읽을 수 있거든요. 이 기념관과 마주보는 공원 건너편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St.Patrick’s  Catholic Church가 있습니다. 작고 오래된 성당은 주위를 둘러싼 고층 건물의 위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공원을 수호하는 듯 느껴집니다. 성당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이 보이는데, 바로 유대인 박물관 Contemporary Jewish Museum 입니다. 그리고 Museum 1층 로비에는 빛이 아름답게 드는 유태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Wise Sons Jewish Delicatessen에서는 커피와 간단한 베이커리부터 유기농 건강식 메뉴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니, 창 밖으로 공원을 바라보며 한끼를 즐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커피 맛도 참 좋으니까요. 


 예르바 부에나 가든은 대형 Metron몰과 아트 센터, 극장 등의 문화공간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5분 거리에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San Francisco Museumof Modern Art가 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제가 당신을 이끌고 싶은 목적지 입니다. 금문교와 항구, 알카트라즈 섬 등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운 장소 투성이지만, 저는 이 미술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이 곳은 공간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특히 이 곳에서 3명의 작가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기에 저에게는 더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작가와 작품을 만난 당시의 감흥을 섬세히 묘사하긴 힘들겠지요. 그 감흥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그 중 한 작가를 짧게 소개해봅니다. 












Diane Arbus 특별전 / In The Beginning 




 제가 방문했을 때는 특별전시로 Diana Arbus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뉴욕 출신의 여류 사진작가인 그녀의 초기작품을 모아놓은 전시였습니다. 작품사진을 찍기 시작한 1956년부터 1962년까지의 작품 100여점을 모아놓은 꽤나 큰 규모였습니다.  

 

 그녀의 사진은 강렬했습니다. 그건 그녀가 택한 피사체와 피사체를 다루는 방식 때문일 것입니다. 상업적인 촬영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그녀는 곧 싫증을 느끼고 개인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상업사진의 규칙과 굴레에서 벗어난 그녀는 카메라에 평범하지 않은 대상들을 담았습니다. 기형을 가진 사람이나 서커스 극단 단원, 여장남자들이 그녀가 애정을 가지고 찍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사진 중앙에서 이쪽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건 나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라는 당당한 선언 같았습니다. 사회에서 소외 받는 이들일 지라도 그녀의 사진 안에서는 의기소침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도전적인 눈빛과 몸짓은 우리의 편견에 시비를 걸고 동정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A female impersonator holds long gloves in Hempstead, Long Island in 1959
Untitled, c. 1970-1971
A young man in curlers at home on West 20th Street, NYC  1966
Masked Woman in a Wheelchair, Pennsylvania, 1970



 그녀의 사진들은 어떤 가공이나 효과를 주지 않았는데도 묘하게 비현실적인 세계처럼 보입니다. 가장 사실적인 모습을 담으면서 환상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탁월한 재능이겠지요. 저는 그녀의 재능이 기술이나 기교의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시선이 가진 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가보지 않은 곳으로 발을 내딛는 모험가였으며, 모두에게서 소외받는 것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려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기형을 가진 사람들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고난을 이미 갖추고 태어나 극복한, 성자처럼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주는 낯섦과 충격은 우리가 편견으로 세상의 어떤 일상적인 삶들을 외면해왔음을 깨닫게 합니다.   


Freaks was a thing I photographed a lot.... Most people go through life dreading they'll have a traumatic experience. Freaks were born with their trauma. They've already passed their test in life. They're aristocrats.


 



Identical Twins, Roselle, Nj, 1967
Jewish Giant, taken at Home with His Parents in the Bronx


 


 그녀는 행인이나 어린 아이를 찍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녀의 시선 때문인지 어딘가 기이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특히 폭탄이나 장난감 총, 괴기한 가면과 탈을 쓴 아이들의 사진은 천진난만함을 넘어 순수한 악을 보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20세기 초 뉴욕의 민낯을 기록한 작가로 인정받는 까닭은 아마도 그녀가 포착한 경계심, 고독감, 부조리, 허왕심 등이 사진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A girl with a pointy hood and white schoolbag stands at the curb in New York City  in 1957
Child with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N.Y.C. 1962
A kid in a hooded jacket aims a gun in New York City in 1957


 


 그녀의 사진은 살아 생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평소 감정기복이 강하고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는 50세가 되기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전시를 본 후에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았습니다. 그녀의 삶은 2006년 <퍼>(Fur: An Imaginary Portrait Of Diane Arbus) 를 통해 영화화되기도 했더군요. 허구가 많이 덧칠되어 있긴 하지만 니콜키드먼이 연기한 그녀는 생전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주로 해외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았는데, 그녀가 남긴 몇 마디 말을 훑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들을 통해 그녀가 세계를 바라봤던 시선과 품고 있던 신념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I do feel have some slight corner on something about the quality of things. I mean it's very subtle and a little embarrassing to me, but I really believe there are things which nobody would see unless I photograph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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