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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30. 2018

엄마는 왜 미안해해야 할까

엄마란 존재, 그리고 모성에 대해

 지금은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어렸을 때 저는 확실히 착한 딸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말씀이 사실이라면 정말 그렇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저녁 늦게 퇴근해보니 쌓여있던 그릇들이 다 설거지가 되어 있었대요. 엄마는 놀라서 누가 다녀갔냐고 제게 물으셨죠. 그때 저는 싱크대 수도꼭지에 손이 닿지 않는 일곱 살이었거든요. 제가 했다고 대답할 때도 처음에 엄마는 믿지 않으셨대요. 제가 식탁의자를 싱크대 앞에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설거지를 했다고 설명하기 전까지는요. 아마 어린 아이의 작고 서투른 손이 한 설거지는 완벽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건조대에 놓인 그릇들을 새로 닦아내야 하셨겠지만, 그 일을 두고두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무척 행복하셨나 봅니다. 


 이 일화를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건 제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린 날들의 흐릿한 조각들은 남아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엄마 아빠는 저희와 시간을 보내려 애쓰지만 늘 바쁘고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분은 함께 교직생활을 하셨고 외가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한 후에는 저희를 돌봐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어요. 부모님은 저녁까지 운영하는 유치원을 찾아 종일반을 등록하셨지만, 그럼에도 저와 제 동생은 종종 유치원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동생과 둘만 있는 시간을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다만,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부모님이 안타까웠어요. 엄마, 아빠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혼자 설거지도 했던 걸 테고요. 


 언젠가 엄마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점심 급식 없이 단축수업을 하는 기간이 있었다고 해요. 부모님은 눈 앞이 캄캄했죠. 혼자 집을 찾아올 수 있으니 일찍 하교하는 거야 문제될 게 없지만,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저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니요. 새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안돼 손 빌릴 이웃도 없고, 당시에는 정기 배달서비스나 테이크아웃도 흔치 않았으니까요. 엄마는 고민 끝에 집 앞 빵집을 찾아가셨답니다. 그리고 매일 점심때쯤 제가 오면 단팥빵이나 소보루 같은 빵 하나씩을 주라고 부탁하시곤 가불을 하셨습니다. 제게도 신신당부 하셨겠지요. 학교가 끝나면 점심을 거르지 말고 꼭 빵집에 가서 먹으라고요. 아마 전 매일 즐겁게 그 빵집을 찾아갔을 거예요. 수십가지 다양한 빵 중에 오늘은 무얼 먹을 수 있을까 설레 하면서 말이예요. 


 그런데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엄마가 미안했어.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미안해. 밥 한끼 해먹이는 게 그땐 왜 그리 어려웠는지. 먹는 게 제일 중요한 시기에 고작 빵집에서 매일 먹게 했다는 게… ” 

 

 어린 날의 기억이 아예 없는 게 아닌데도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큰 사건들을 정작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다른 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기억하는 문제였으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사건은 주로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대부분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비롯되는 것들이지요.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거나 저녁상에 둥그렇게 둘러앉고 어려운 숙제를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요. 그러나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들은 보통 부모님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제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 또는 저를 나무랐던 일들 … 특히 엄마의 과거는 그런 미안함이 점철된 기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이 새겨질 틈 없이 과분한 사랑 속에서 저는 자라났어요. 제 안에는 일상의 행복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으니, 몇 번의 사건으로 부모님을 원망할 이유가 없었던 거지요. 저는 참으로 좋은 부모님 밑에서 행복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저는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한,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딸로 기억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늘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마음의 부채에 괴로워야 하는 존재일까요. 저는 훌쩍이는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말했습니다. “왜 엄마가 미안해해요, 그게 엄마 잘못도 아닌데.” 나는 늘 나의 엄마를 존경했습니다. 가정을 챙기면서도 엄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밖에서도 늘 열심히던 엄마의 모습을. 한 사람의 꿈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위치보다 더 넓고 큰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엄마는 가족에 헌신적이었던 엄마의 어머니를 되새기면서 그런 죄책감을 키워오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엄마라는 존재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야 하는 죄책감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우리 사회에는 나쁜 엄마가 될 수 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들이 더 많아요. 그런데도 나의, 우리의 엄마는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그 모든 일들을 자신의 잘못으로 떠안고 살아갑니다.  

 

 평소에 미안해, 라는 말 대신 고마워, 라는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엄마에게만큼은 에둘러 감사하다고 말하기 보다 미안해하시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엄마와 나 사이의 역사에 어떤 결핍이 있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요. 오히려 받은 것만 기억하고 드리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딸이 언제나 더 못난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꼭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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