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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13. 2018

원작 <마더>의 강렬한 한 마디

엄마란 존재, 그리고 모성에 대해

 한국에서 일본 드라마 <마더>를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했습니다. ‘일드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은 국내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죠. 2010년 방영된 <마더>는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습니다. 그 해의 드라마로 꼽히며 상을 휩쓸었고 특히 열연을 보여준 아역배우 아시다 마나는 드라마를 통해 국민배우로 발돋움합니다. <마더>는 이 아역배우로 완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에는 저도 동의해요. 극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풍부한 표현력은 아이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알려진 비화로는, 캐스팅 커트라인에 미치지 못하는 아시다 마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은 ‘이 아이여만 한다!’는 생각으로 대본을 수정하면서까지 출연시켰다고 하네요. 


 저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한국판 <마더>를 보기 전 먼저 원작 <마더>를 보았습니다. (왓챠플레이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어요!) 총 11부작으로 한국판보다 회차가 짧은 덕분에 외출을 하지 않은 주말 동안 전부 볼 수 있었어요. 펑펑 울면서 말이죠. 원작은 임시 교사였던 나오가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레나를 납치하여 새 엄마가 되어주고, 뒤늦게 납치 사실을 안 친모의 신고로 모녀가 잡히게 되는 중심 사건에 집중합니다. 한국 드라마에 비해 주변 인물도 적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다뤄지는 비중이 낮아요. 그래서 극의 전개 속도가 빠르고 극 전체가 하나의 중심 이야기로 응축되어있죠. 그러니까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재현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원작과 한국 리메이크작에는 7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내용 상의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죠. 한국 드라마는 원작을 세세히 차용하기보다는 17년 현재의 한국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많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16부작으로 길어지면서 더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켰지요. 원작의 등장 인물의 관계도는 간결합니다. 나오와 레나, 레나의 친모. 그리고 나오의 엄마와 친모가 중심 인물이죠. 나오를 추적하는 기자나 나오의 여동생들이 주변적으로 등장하지만 한국판의 인물처럼 분명한 캐릭터와 고유의 이야기를 갖진 못합니다. 반면, 한국판은 자영의 애인, 경신의 매니저인 아저씨, 경신이 수진에게 소개한 주치의 의사 등이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극의 주변적 이야기들은 다채로워졌지만, 해결사 역할을 차지한 남성 인물들을 보며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원작에서는 일반적인 남성의 존재에 기대지 않고(남성이 등장하는 경우도 드물거든요)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원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한국판에서는 간접적으로 말해졌지만, 원작을 볼 때 그 직접적인 화법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나오의 행적을 추척하는 과정에서 신문사 기자는 나오를 버렸던 생모가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살해한 죄로 수감되었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 그 재판의 담당판사에게 살인 사건에 대해 물으며 모성에 대한 얘기 나누게 되죠. 노인이 된 남자 판사는 그 사건을 ‘남자들은 알 수 없는’ ‘어머니라는 존재였기에 가능했던 사건’으로 회상합니다. 그러나 정작 사건의 장본인인 나오의 친모는 모성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평소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깜빡이 아줌마의 차가운 표정을 처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란 존재의 특별함을 강조하며 살인사건을 해석하고 있는 판사.




그러나 당사자인 어머니는 모성의 환상을 단호하게 부인하지요.



그런 건 남자들의 환상일 뿐이에요.





 어쩌면 원작은 남성이, 사회가 으레 빚어놓은 어머니에 대한 신화를 깨트리려는 도발적인 작품이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사랑 받고 예쁨 받고 싶은,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접 낳지 않아도 생물학적 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수행적인 어머니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원작 <마더>의 어머니들은 전형적 어머니상에 속하지 않는 현실 속 어머니의 다양한 변주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완벽하지도 않고 초월적인 힘을 가진 어머니가 아니라 미숙하고 실패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자식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끝없는 노력이 그들에게 어머니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작품은 ‘신화화’된 모성의 환상을 깨고, 현실의 어머니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주름이 자글한 어머니의 손등을 비추는 것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직까지도 강력한 모성의 신화와 환상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옭아매고 있지 않는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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