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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06. 2018

되어가는 엄마, 드라마 <마더>(2)

엄마란 존재, 그리고 모성에 대해

 제가 <마더>를 통해 생각해보고 싶은 건 바로 ‘엄마 되기’입니다. 우리는 엄마라는 존재를 생물학적 관계, 자식을 낳은 사람으로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진과 영신은 극에서 온 몸으로, 단순하고 폭력적일 수도 있는 이 관념에 저항하고 있죠. 그들의 존재가 증명하고 있는 건 실제로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이자 한 가정을 일궈온 남다른 엄마로써 영신은 극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명대사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대사는 이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배로 애를 낳아야만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한테 자기를 다 내어주는 것. 혜나 엄마(자영)는 낳기만 낳았지 엄마가 아니고요. 우리 수진이가 진짜 엄마예요.




인물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카피가 새겨진 개인 컷들. 왼쪽부터 수진의 엄마 영신 > 윤복의 엄마 수진 > 혜나의 친모 자영 (출처:tvn 마더 공홈)




 드라마 첫 회에서 수진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보다는 자신이 연구하는 새에 관심과 애정을 쏟는 연구자로 보였죠. 그렇지만 학교에서 키우던 동물을 괴롭힌 남자 아이에게 ‘여자, 동물. 너희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혀선 안돼’라고 말할 때 이미 그녀는 엄마가 될 준비가 끝났던 건지도 몰라요. 모자를 꾹 눌러쓰게 해 혜나의 얼굴을 가리고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도피를 떠나면서 수진은 혜나가 원한 ‘윤복’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여줍니다. 수진은 양육에 대한 지식이 없어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프지만, 윤복(혜나)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만은 강력합니다. 그녀는 섣불리 자신이 엄마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너를 윤복이라고 불러도 갑자기 니가 백 프로 윤복이가 되는 건 아니잖아. 조금씩 조금씩 윤복이가 되겠지? 아마 나도 갑자기 윤복이 엄마가 될 수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다 어느 날 너도 윤복이가 되고 나도 윤복이 엄마가 되고… 그렇지 않을까? 


 엄마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얻어지는 자격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자영이 자신이 친모라는 사실을 불가침한 권력으로 휘두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한계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엄마는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보살핌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한국판 <마더>의 작가도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서 ‘엄마 되기’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아이에게 미숙한 나를 탓하다가 나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에 다시 아이를 탓해보고, 아이가 지어준 웃음에 잠시나마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가 버거운 엄마의 일상에 다시 쉴새 없이 허덕이는 그런 수백만 번의 일, 수천만 번의 마음들을 겪고 나서야 엄마가 조금씩 엄마가 되고 아이가 조금씩 아이가 되어간다. 엄마는 그렇게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  

 


 '엄마 되기'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엄마란 존재는 꼭 친모라는 조건에 얽매여야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출산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다만 엄마는 그 자격만으로 간편히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엄마는 행위에 더 가까운 이름의 존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엄마는 꼭 여성일 필요도 없고, 아빠와 쌍을 이뤄야 하지도 않으며, 완벽하고 완전한 사람도 아닐 거예요. 자신이 품은 자식과 함께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존재. 하루 하루, 자신의 곁에 연약한 생명체를 보살피고 키워내며 같이 성장해나가는 존재. 완벽함이 아닌 꾸준함과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해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의, 우리의 엄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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