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의 어려움이 새로운 문을 열어줬다.

by sigewo

2017년 4월 27일, 한국의 밭에서 일하려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온 내 앞에 어떤 한국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나보다 몇 개월 일찍 한국에 와서 대학원에 다니던 일본 친구의 아는 사람이었다. 그날 30킬로 넘은 내 짐을 차에 실어주고 서울까지 데려다준 그는 어느새 일주일 한 번, 주말에 만나는 사이가 됐다. 만난 장소는 강원도, 전라북도, 충청남도에 있는 유기농가의 밭에서였다. 우리는 밭에서 같이 파를 심었고 마르쉐에서 채소를 파는 일을 도와줬고 쉬는 날은 주변에 관광하러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모국어는 한국어이고 내 모국어는 일본어이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할 줄 알지만 일본어는 전혀 못했다. 나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잘 못하지만 2012년부터 1년 동안 서울에 있는 어학당에서 공부했었기 때문에 한국어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100프로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만난 지 7개월 됐을 때 우리는 일본 코베에서 가족끼리 모여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통역사는 따로 쓰지 않고 신부인 내가 다 통역을 했다. 그렇게 해서 가족이 된 우리는 2017년 12월부타 한국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원래 하던 개인사업을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했고 나도 날마다 그 일을 도와줬다. 그러던 어느 날, 냉동실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겨울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차갑고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자몽주스도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 그 10개월 후, 나는 엄마가 됐고 그는 아빠가 됐다. 우리는 아들에게 말을 걸을 때 서로 모국어를 쓰고 아들은 두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아이를 갖게 된 나는 사실은 너무 고독했다.


입덧 시작했을 때는 내 몸이 마늘 냄새를 완전히 거부해서 냉장고는커녕 안방 문을 열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남편이 식당에서 한식을 먹고 오면 가까이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한 달 반정도 자세히 얼굴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당장 짐을 챙겨서 마늘 냄새 안 나는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유산할까 봐 겁이 나서 비행기를 못 탔다. 점점 한국어를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들어진 나는 일본어 할 줄 아는 친구들을 만나서 마음껏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한국에 사는 찬구들은 다 멀리에 있었고 역시 마늘 냄새로 가득한 바깥세상에 나가는 건 너무 무서웠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없이 아기를 키우고 돌잔치를 마친 후.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이 불안해하던 무렵, 남편이 큰 수술을 받게 됐다. 암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새로 유행 시작한 바이러스 때문에 일을 못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는 한 달 정도 자기 몸 회복시키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그 해는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일을 못하게 됐다. 나는 이대로 살면 말 그대로 먹고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바로 시작했다. 하지만 세 식구 살만한 금액은 못 벌었다. 한국에서 못 버는 거라면 고향에 가서 일해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도 한일 간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결국 3년 동안 고향의 부모님 뵈러 갈 수도 없었다.


지나간 일이라 이렇게 쓸 수 있게 됐지만 그때는 사람들 다 힘든 시기였기에 이런 이야기는 말할 수 없었고 현실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무섭고 못 살 것 같아서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3년 정도 그렇게 살았더니 나도 르게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 다시 안 태어나도 돼. "라든가 "당장 사라지고 싶어!"라는 혼잣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개 그건 남편과 싸웠거나 아들 육아 때문에 지쳤을 때 생긴 일이었다.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설거지했을 때도 진행자가 하는 말에 자꾸 맞장구치거나 큰 소리로 대답하는 내가 있었다.


"나 혹시 이상해졌나? 아니면 그냥 나이 먹어서 혼잣말이 많아진 뿐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프랑스에 사는 일본인 팟캐스트를 들었던 어느 날. 프랑스 생활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일본어를 들으면서 뭐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는커녕 바로 옆에 있는 고향에도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먼 나라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시작은 갑자기였다. 아들을 재우고 나서 빨래를 널은 후 핸드폰 앞에 앉아서 녹음 버튼을 눌렀다. 2023년 4월 28일. 내가 30킬로 짐을 들고 인천공항에 내려온 날부터 딱 6년이 지난 봄의 밤이었다.




일본어 팟캐스트 《한국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는 웹과 다양한 앱에서 청취할 수 있습니다.

(Spotify / stand.fm / YouTube / amazon musi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