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락스의 영화는 어렵다. 동시에 흥미롭다. 프랑스의 예술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작가주의 작품들이 그쪽 문화에서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도대체 레오 카락스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홀리 모터스>는 보통 카락스의 영화중에 최고작으로 여겨진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어 평론가와 일반 관객들 사이의 평가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 카락스는 왜 여전히 거장이라고 불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우리는 할리우드식 이야기 전개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그런데 대뜸 이런 생각이 든다. 영화는 그저 보는 게 아닐까? 영화는 그저 쳐다보고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영화를 보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사실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홀리 모터스>의 주제는 무엇일까? 거기에 주제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예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특히 작가주의 방식의 영화는 관객들이 자기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구분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무료함’(dullness)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야기를 조금 더 심화시켜보자면 결국 ‘직업’(job), ‘일’(work)이라는 담론으로 확장된다. 영화 속 주인공 오스카(드니 라방)은 갑부로 나온다. 아침에 가족에게 일을 나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신만 아는 은밀한 일을 수행한다. 하루 동안 그가 하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어떤 이익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그 일을 매일 반복한다. 카락스는 영화 속에서 오스카의 이런 ‘무료한’ 행태를 오히려 수긍하고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스카가 하는 일들이 도리어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카락스는 오스카에게 자신을 대입한다. 예술가란 어쩔 수 없이 이 ‘무료함’을 인생에 품으며 살아간다. 예술가는 모든 것이 멈춰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미지의 세계를 홀로 탐구하며 세상 밖으로 그것을 던진다. 사람들은 그 낯설고 충격적인 참상을 목격하고 그제야 자기가 알던 세상이 틀렸음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세계와 관객을 중재하고 이어준다. 그들은 세상이 당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영화 속 오스카는 정치적인 시각에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과두정치(oligarchy) 또는 귀족정치(aristocracy)의 표본이 된다. 우리는 한 명의 국민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건강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흔하고 위험한 착각은 모든 존재는 평등해야만 한다는 왜곡된 사상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보이지 않는 독소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와 소수의 독점적인 집권 정치가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지난 세기의 독재정권을 경험하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언뜻 보기에 오스카의 일이 아무 쓸모없게 느껴지지만 그는 지금 매우 영적(spiritual)이고 구조적인(structural) 일을 하고 있다. 구조를 바꾸는 일은 점심을 먹고 집안에서 남은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지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어떤 직업이나 사람을 비하하는 의도가 아니라는 걸 유념해 달라).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수천, 수백만의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소수의 지혜로운 선인들도 필요한 법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무료함’이 도리어 누군가에게는 지혜의 원친이 된다.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는 해괴한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광기를 품기도 하고 기존에 세워진 견고한 사회와 체제를 파괴하는 쪽을 달려가기도 한다. 오스카는 그것들을 부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생소하고 희귀한 일을 하고 세상은 그렇게 변해간다. 그래서 <홀리 모터스>는 어쩌면 매우 종교적이고 의식적이고 제사(祭祀)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만약 오스카의 무료한 일이 세상의 어떤 변화와 분명한 인과가 있다는 게 과학적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소시민으로써 우리가 세심히 들여다봐야할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음모론. 일루미타니. 프리메이슨. 상상 속에서만 움직였던 것들이 진짜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뭐, 우리들의 아빠가 만약에 오스카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