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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Mar 20. 2022

류이치 사카모토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정말 좋은 곡들이 많지만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이 곡을 들었었다. 그때 평생에 함께 할 수 있는 곡을 만난 기분이었다. 일본의 예술이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마 ‘장인 정신’(mastership)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도 정명훈, 김연아 같이 어떤 한 분야에 최고가 된 사람들이 많지만, 왠지 일본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일본 주류사회 안에 뿌리 깊이 박힌 보수적인 기질이 자신만의 우물을 파게하고, 탁월한 몰입과 테크닉으로 정점의 고지에 닿도록 이끈다. 좋게 말하면 끈기 있는 민족성을 타고났다고 말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뼈와 살을 갈아 작품에 자신의 흔적을 각인한다. 유물론자처럼 작품 안에 정령을 들이밀며 그것이 살아 숨 쉬도록 생령을 불어넣는다. 일본의 모든 예술의 지향점이 같을 순 없겠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론, 곧 예술가들이 겪어야만 하는 ‘’ 과도기적 과정(transitional stage)은 형태와 모습만 다를 뿐, 그 내재된 속성, 시스템은 모두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령을 섞고, 버무리고, 빙의되며, 전사하고, 투사하며, 삼투한다. 그들은 본디 그렇게 예술과 혼연일체가 된다. 이것이 그들이 진정 추구하는 바가 아닐까. 


 사카모토의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예술의 이러한 깊이를 체감하는 쪽으로 이끈다. 나는 이것이 예술가가 부릴 수 있는 최고난도의 기술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양’(amount)만으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질적 수준이며 그 작품의 무게감(mass)이다. 무게감은 형태가 크지 않아도 그로 인한 균열과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굳이 얘기하자면 바흐가 이런 무게감을 느끼기에는 제격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지만 한편으론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난해하다. 곡은 한 사람의 고뇌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전쟁의 참혹한 잔상과 그 후유증, 여파, 무상함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시간이 된다면 사카모토의 피아노 독주 영상을 보시기를 추천한다. 건반 하나하나 누를 때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하며 자신이 담고자 하는 ‘’ 깊이를 심연으로 빠트린다. 곡에는 분명 정치적인 의식과 감각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곡은 제국주의의 태양은 황혼을 맞고,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새 시대를 예고하는 것 같다. 세간에서 사카모토의 음악이 뉴에이지라고 부르는 게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이 국가주의에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곡은 다른 민족이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일본만의 감성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에도 쉽게 넘나들 수 없는 경계가 있으며 민족성과 특유의 감성체계가 있다. 음악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과 조예가 없는 사람이 프로코피예프나 라흐마니노프를 단번에 이해하기 만무하다. 이 또한 러시아적 감성을 어느 정도 터득해야 가능하다. 


 나에게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가 어떤 존재나 대상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 어떤 존재나 대상은 인간 개인이 되기도 하고, 집단이나 국가와 같은 공동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대상이 집단에 더 가까울 것이라 느낀다. 하루가 가고 하루가 오는 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한 세대가 지나고 또 다른 세대가 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 또한 때가 되면 서서히 그 자취를 숨길 것이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이상향. 그리고 새로운 동경.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라는 존재도 언젠간 이름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이 불가피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 즉 개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 사이에서 메트로놈처럼 끊임없이 공명하며 자가 회복하고 빛을 밝힌다. 곡은 그것의 파장을 음표로 바꾼다. 비가 내리거나 마음이 침잠해질 때에 나는 가끔씩 이 곡을 튼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안을 건드리고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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