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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훈 Oct 23. 2022

불안의 시대 - 4

<종말에 관한 기록> - 글래머러스한 것들

종말의 시대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빅뱅이 시작된 이후, ‘하나님’이라는 작자는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한다. 하늘과 궁창을 만들고. 세계를 만든 이후에, 바다를 만들었다. 동물을 창조하고. 그리고 최초의 인간을 만들었다.




창조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진화론도 함께 시작되었다. 스멕타이트(Smectite)와 일라이트(Illite)가 서로 이온들을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클레이(clay)를 만들었다. 클레이는 이중의 층 구조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클레이 층 사이 텅 빈 공간에 숨을 불어 넣어 유기체를 창조했다.




이 모든 일들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일어났고 에덴동산은 아마 중동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벨탑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 모습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그 바벨탑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언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프랑스어를 사랑한다.




그리고 일본어를 사랑한다.




일본어의 그 휘갈김을 사랑한다. 학문적이면서도 중세풍이 느껴지는 고루함. 아마 일본인들은 매우 학구적인 조상들을 가졌던 게 확실하다. 그들은 항상 섬에서 벗어나 대륙을 훔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귀족적인 언어를 쓰는 척을 해야 했다. 대동(大同)아 이론을 펼치면서 이 땅을 다스리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해 왔었다.




일본어는 사무라이의 칼을 닮아 있고 언제나 인간을 베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것에게 베임을 당하고 싶다. 피 묻은 언어를 배우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원이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은 봉주르에서 부터 시작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봉주르 뉴욕』. 나는 당장 뉴욕으로 떠나고 싶다. 왜냐하면 요즘 계속 책에서 뉴욕을 마주치기 때문이다. 나와 친한 형이 다니는 회사의 대표님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장 그르니에의 책을 읽었고, 그의 제자인 카뮈의 책을 탐닉한다.




스피노자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모두 속세를 등지고 하늘로 승천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이리도 계시적일까? 폭로하는 게 꼭 좋은 것일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게 꼭 좋은 것일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아는 게 꼭 좋은 것일까? 스웨덴보리처럼 신비주의자로 사는 게 꼭 좋은 일일까?




아마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했던 ‘다가올 수 없는 메시아’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다. 그 메시아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멀어지고 있다.




섹스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르가즘이 없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밋밋해질 것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서 연구한다. 그리고 섹스에 잠입한다. 아주 훌륭한 몰입으로 삽입의 과정을 지켜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장면들이 더는 재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역한 느낌이 들고 구토를 할 것 같다.




성의 신비를 알고 난 이후에는 조금 더 벗어 재끼고 싶다. 조금 더 야한 포즈를 취하고 싶다.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이중적인 워킹. 목에는 당당함이 스며들어 있고 마음에는 다함없는 남근을 품는다. 그리고 여자를 아래에서 위까지 훑어버린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다함없는 행위 이후에 나는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가장 편안한 직업인이 되었다. 정치를 하고 아래로는 후사를 두게 되었다.




화성에서는 섹스를 할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수원 화성의 들판에서는 대낮에도 할 수 있겠지.




방심했다간 우리의 성기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근육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비비고 뿌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지 마라. 그러므로 나무에 홈을 파고 인간 아닌 생명들과 교합을 시도하려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그대에게 면죄부를 내리노라!




그러나 잠시 후 마르틴 루터는 95개의 반박 글을 써 붙인다.




1. 평생 섹스 할 수 있는 자유를 너희에게 부여하노라.


2. …


3. …




인간은 지금까지 그렇게 번성했다. 잡스럽지만 아주 끈질기게. 아주 음탕하면서도 마초적으로. 수많은 기름들을 자궁에 흩뿌리며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려 한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모든 걸 수용하는 음부를 사랑하며 핥으려 한다. 나는 자주 공상에 빠지며 멍한 공간에 나 자신을 내던진다. 이제 내 앞에 심판이 예비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그러고 싶다. 사랑한다. 또 사랑한다. 나의 카타르시즘을.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문자의 언어를. 언어들을 마구 섞어 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싶다.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들을 수 있는.



아브라카다브라




사랑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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