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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파치노

< Al Pacino ; 대부. 계보. 남자 >

by 심재훈



「대부」 시리즈는 내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


말론 브란도에 이어 잘 생긴 얼굴 하나가 있다면 그건 알 파치노 일 것이다.


말끔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그리고 마피아.


남자들은 언제나 누아르를 쫓는다. 누구나 두목이 되고 싶어 한다. 사나이가 세상에 한 번 났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내 손짓 한 번이면 한 사람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그런 전지전능한 권력을 한 번쯤은 쥐고 싶어 한다.


남자들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알 파치노는 모든 남자들의 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렇게 살고 싶은 거다.


「대부」의 테마곡을 참 좋아한다. 그 음악은 한 인간의 찬란했던 시절과 비극을 마음대로 섞어 우리에게 선사한다. 거기에는 외로움과 처량함, 고뇌와 영광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마이클 꼴레오네(알 파치노)는 선량한 소년 같은 표정 뒤에 남성다운 야망을 숨겼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정점에 섰지만 결국 곁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그를 떠났다. 도대체 남자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남자는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지만 결국 누구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쓸쓸하게 퇴장한다. 비토 꼴레오네(드 니로)와의 평행이론 가운데 마이클도 결국 죽음과 추락을 피하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의 눈가엔 금세 눈물이 맺힌다. 남자의 삶은 한없이 처량하다. 젊었을 때는 영광을 누리고 늙어서는 비극을 맞이하는 남자의 운명이 비정한 역사적 사실처럼 내 마음에 꽂힌다.


「스카페이스」(1983)에서 알 파치노는 욕망 덩어리로 변신한다. 총을 난사하며 최후를 맞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콜세지스럽다. 마틴 스콜세지.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나 「디파티드」 같은 ….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나 보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고. 둘을 얻으면 셋을 갖고 싶고.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까지, 어쩜 허영심 넘치는 꼰대 역을 그리 잘 소화하는지 감탄이 나온다. 옛날에는 알 파치노 파와 드 니로 파가 서로 실랑이를 했다고 한다. 아직 내가 드 니로 영화를 그렇게 많이 못 것인지 … 나는 드 니로보다 ‘알’이 더 좋다.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이 「여인의 향기」(1992) 같은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알 파치노가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 번 더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인썸니아」(2002)와 같은 짙은 서정성을 누려봤으면 좋겠다.


나는 알 파치노가 어떤 영화적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제 노장이 되었다. 알 파치노 이전에 말론 브란도가 있었다면 지금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 뒤를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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