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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이야기

by 심재훈


나는 한스 짐머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리고 밤에 잠이 들기 전 우주음악을 틀곤 한다. 그리고 나는 페렐란드라(C.S. 루이스 우주 3부작 소설)로 떠나는 열차에 오른다. 그곳에서 나는 랜섬 Ransom이 되고 초록 여인과 함께 은빛 물고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 이때 말렐딜(소설 '페렐란드라'에서 신)은 나에게 요한 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튜닝해준다. 나는 그렇게 고요히 잠이 든다. 그런데 왜 교회음악에는 이런 우주적 요소들이 결핍되어 있을까? 우주적 고요함에 빠져들 수 있는. 창대하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이끄는.


매일 밤 「인터스텔라」 테마 곡을 틀어놓고 잔다. 이렇게 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습관이 되었다. 그 확장성을 좋아하는 탓일까? 내 몸과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잠도 잘 온다.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향한다는 건 숨 막히는 일이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세계에 봉착했을 때.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을 때. 거기엔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 그대로, 저기 반짝이는 별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주음악은 내 상상력을 활짝 열어주고 나는 그렇게 어디론가 떠난다. 머리는 가벼워진다. 마음은 차분해진다.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가 어쨌든 존재한다는 사실이 왜 나에게 그토록 엄청난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주를 생각하면서 산다. 우주를 생각하면서 밥을 먹고, 우주를 생각하면서 샤워를 한다. 그리고 우주를 생각하면서 4419번 버스를 탄다. 우주를 생각하면서 산책로를 걷는다. 그건 마음의 위로제다. 이런 기대감을 안고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다. 바로 거기서 요한 스트라우스의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이 흘러나온다. 나는 또 감격한다. 최근에 본 브래드 피트의 「애드 아스트라」도 좋았다. 그 영화에선 우리 은하의 끝까지 간다. 「그래비티」(2013)의 마지막 장면과 음악은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새벽 3시. 몇 시간 후면 어스름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난다. 오늘도 우주음악을 들으며 잘 것이다. 자는 동안 내 머리와 가슴이 다시 가벼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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