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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1992)

by 심재훈



영화 <여인의 향기>가 나온 해에 나는 엄마 배 속에서 나왔다. 시간이 참 빠르다. 여인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침범하는 행위나 같다. 알 파치노는 이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한다. 실제 장님이라도 된 것 같이 그는 지팡이로 앞을 두드려본다. 소년은 처음엔 그 장님 노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와 동행하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장님 중령의 마지막 연설은 심금을 울린다. 앞을 보지 못해도 볼 수 있는 사람. 이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물며 우리는 눈을 뜨고 앞을 보지만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장님 신세 아닐까.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어떤 의무에서도 자유롭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인생을 산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회사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일까? 누구나 인생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커다란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더 열심히 살아서 이 벽을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 벽을 넘어가는 걸 포기할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전자를 따라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후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스스로 저 커다란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포기하고 나는 그 벽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세상에는 긍정적인 포기도 있다. 그리고 그 벽을 넘어가지 않고 그 벽을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또는 언젠가 세찬 폭풍이 몰려와 벽을 무너뜨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우아하고 유유하게 그 무너진 자국 위를 밟으며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주로 하기 싫은 일들을 해오고 살았다. 그래서 마음과 정신은 나날이 피폐해져만 갔고 황폐해져 갔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험들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육체적인 병들이 창궐했다면 지금은 정신적인 병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우울증과 정신분열은 만연해진다. 그렇다며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낭만이다. 생명력 있는 낭만. 바로 그것이다. 자발적으로 쉬고자 하는 욕구들이 우리를 다시 숨 쉬게 만들 것이다. 이 위대한 사명에 문학은 참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래서 적절히 보헤미안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켜던 영국 아저씨처럼. 난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적고 싶다. 오히려 불완전한 글이 더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만큼 글도 절대 완벽할 수 없다. 지금은 그렇게 잠잠히 프랭크 중령이 말하는 낭만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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