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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세계

by 심재훈



공포영화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 것 같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는 공포라는 게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람이라는 건 단순한 형체일 뿐. 우리 안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모르는 거다. 귀신이 숨어있을지도. 혹은 악령 같은 게 우리 마음에 깃들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유전」은 가족이라는 가장 따뜻한 집단에 내재해있는 공포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 각자 모두 어떤 악령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전」의 마지막 장면은 이를 잘 묘사해준다.




디아블로 16세 … 루시퍼 27세 … 맘몬 9세 …




이게 우리 각자의 진짜 이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항상 숨겨진 비밀로부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지금 내 옆에 비밀스러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또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빛이 환하게 비추는 데서 움직이는 악마. 우리 집 테라스에서 살고 있는 악마.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 악마는 소리 없이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다. 우리는 악마와 함께 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오는 「퍼스널 쇼퍼」라는 영화를 참 좋아한다. 이 영화도 보이지 않는 실체를 쭉 따라가고 있다. 여기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거의 마스터피스처럼 보인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다. 나만 그런 걸까? 때로는 흔한 멜로나 코미디 영화보다 이런 미스터리 공포 영화 한 편 보는 게 마음을 더 차분하게 해 준다. 심령주의 영화는 벌써 수두룩하게 널려 있지만 제철음식처럼 때마다 나타나 현실과 영적 세계에 대해서 사람들을 각성시키곤 한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뒤에는 언제나 영매처럼 살아보고 싶은 내 소박한 욕망이 숨 쉬곤 했다. 진짜 영매처럼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심령주의자로 살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이를 적당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심령주의자라는 직업까진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적당한 심령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지혜 정도로 둘러대고 싶다. 가까이 사귀고 싶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 그 정도는 분별하며 살아가면 좋지 않겠는가?


「미드소마」는 탁월했다. 앞에서 말한 심령주의가 고인 물처럼 너무 오래 썩게 되면 저런 꼴이 나지 않을까. 현실을 부정한 채 자기 안에 아집을 놓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밝은 대낮에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중요한 건 빛의 유무가 아니다. 그저 벌어질 일들은 벌어진다. 아리 에스터의 영화는 공포마저 찬란하게 만든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성서 고린도후서 11:14)




무서운 말이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는 단 두 편뿐이 나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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