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tt Damon ; 얼굴. 할리우드. 도피처 >
옛날에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천 송도에서 대학 첫 신입생 OT가 열렸다. 낯선 환경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전공도 달랐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형은 내가 본 시리즈에 나온 배우를 닮았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엔 본 시리즈라는 영화가 뭔지도 몰랐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맷 데이먼 … 맷 데이먼 … 하고 수군거렸다. 나도 모르게 창피해졌다. 대부분 누구를 닮았다고 하는 건 그 대상이 그렇게 잘 생긴 사람이 아닐 때가 많지 않은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건 약간에 누군가를 놀리는 쪽으로 얘기가 흘러갈 때가 많으니까. 어려서부터 이런 얘기를 종종 듣곤 했다. 친구들은 내가 혼혈아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이 너무 창피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두려웠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하는 친구들을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그게 창피하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건 그렇게 나쁜 말이 아니었다. 이색적인 외모가 세상 사는데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국적인 얼굴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어릴 때 한국적으로 잘 생긴 친구들이 부러웠다.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런 얼굴. 나는 그런 쪽은 아니었다. 창백한 우윳빛 얼굴에 하와이나 괌에서 창조되었을 만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서 혼혈인 같다는 이름표가 나를 따라다닐 때마다 나는 못내 슬퍼했다. 처음엔 ‘한국 미남’ 남자 친구들을 모방하기 위해서 애썼다. 하지만 얼굴이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던가. 얼굴은 운명과 같다. 그 운명은 내 맘대로 지울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나’라는 존재를 무언가로 정의하는 무서운 것이다. 그건 축복이자 저주이다. 내가 평생 끌고 가야 할 숙명이다. 기다란 숙고와 노력 끝에 나는 ‘한국 미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더 멀리 떠났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지만 도피처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바깥을 보기 시작했다. 정갈하게 정돈된 멋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치 교회에서 사람들이 성령을 입고 감격하는 것처럼 그 순간 내 안에서도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거다. 나는 각성했고 세계로 눈을 돌렸다. 국제적인 감각. 인터내셔널 한 뷰티. 한마디로 나는 그리로 도피했던 거다. 그 미적 감각은 나 자신을 변명할 수 있는 마법 망토가 되어줬다. 난 그것에 빠졌고 나만의 세계를 꾸렸다.
이것이 내가 맷 데이먼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기쁘다. 아,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안도감을 느낀다. 아주 위대한 안도감. 나 같이 생긴 사람이 저렇게 멋있는 할리우드 스타네! 난 이렇게 나 자신을 토닥인다. 여러분들이 시답잖게 여기더라도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난 그동안 내가 들어온 얘기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니까. 조금 부끄러운 건 사실이다.
오! 위대한 리플리. - 리플리(영화 「The Talented Mr. Ripley」 /1999) - 맷 데이먼도 벌써 많이 늙었다. 그러나 중년미를 물씬 풍긴다. 그래도 본 시리즈를 찍을 때만 해도 정말 잘 생겼었다. 나에겐 나중에 늙으면 꼭 이렇게 늙고 싶은 무비 스타들이 몇몇 있다. 예를 들면 백발의 데이빗 린치 같이 …. 맷 데이먼도 그렇다! 당신의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으니 오래오래 스크린에 남아주시오. 당신을 보는 것만으로 내 두 번째 자아를 돌보는 느낌이 듭니다. 그건 정말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거든요.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아련해지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