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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얼샤 로넌

< Saoirse Ronan ; 신세계. 청춘. 갈등 >

by 심재훈

요즘 유럽에서 가장 핫한 라이징 스타를 대라고 한다면 바로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샬라메가 아닐까 싶다. 이 둘의 케미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시얼샤 로넌은 아이리시여서 그 이름도 어렵다. 철자가 발음하기에 너무 어렵다. ‘솔샤’, ‘세라’ 등등. 어느 토크쇼에서 보았는데 심지어 누구는 ‘수아레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 알다시피 ‘수아레스’는 보통 남미계 이름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이빨 쟁이 수아레스를 알 거다. - 아이리시들은 자신들만의 특유한 억양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비음을 쓴다던가? 여기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보통 사람들이 쓰지 않는 얼굴 부위를 사용해서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 저런 해괴한 이름이 존재할 수 있는 거다.


내겐 아이리시 하면 미지의 세계처럼 보인다. 얼마 전 보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 맨」이 너무 인상적인 탓이었을까? 사람들은 아이리시를 지구 상에서 가장 유별난 족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남의 등을 쳐 먹는 인간들이라는 편견. 탐욕과 배신의 아이콘.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는 인간들로 묘사된다. - 사실 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대충 줄거리만 안다. - 마틴 스콜세지가 아이리시한테 따로 악감정이 있다고 느낄 정도이다. 그런데 시얼샤 로넌을 보면 그런 아이리시의 악명이 싹 사라지는 것 같다. 더불어 내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게 아일랜드 아직도 꿈의 세계로 남아있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 영국 런던으로 여행 갔을 때 더블린에 가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 처음에 「안나」라는 액션 영화에서 킬러 역할로 나오는데 그 아역이 정말 귀여웠던 게 기억난다. 그 아역이 시얼샤라는 걸 알게 된 건 아주 나중에서였다.


그녀는 동화에서 나오는 빨간 머리 앤 같다. 정말 그런 이미지다. 완벽한 이상형까진 아니더라도 여자 친구로 사귀고 싶은 캐릭터다. 사족이지만 우리 또래의 영원한 우상은 바로 엠마 왓슨이다.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의할 거다. 엠마 왓슨은 좀 더 우아한 품격이 느껴진다. 반대로 시얼샤 로넌에겐 아이 같은 동심이 남아있는 느낌이다. 시얼샤 로넌에게 히피나 킬러 같은 역할을 맡겨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엠마 왓슨에겐 글쎄 …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엠마 왓슨은 그 나름대로 엄청난 매력이 있지 않은가. 굳이 비유하자면 연애로는 시얼샤가 결혼상대로는 엠마 왓슨이 괜찮지 않을까 …? - 날 용서해주시라. 두 사람의 매력을 묘사해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 「레이디 버드」에서 시얼샤 로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갈등과 리얼리티를 제대로 보여준 것 같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그 당혹스러움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그건 아주 개인적인 체험이어서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아직도 대학이라는 장소가 관계를 위한 곳인지 학문을 위한 곳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선 대학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걸 배우지 못한다. 왜냐면 성적 맞춰 전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도 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다면 관계도 학문도 둘 다 진취적인 성공을 이루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 이건 내 잘못이 아닐 거다. 친구들끼리 백양로 들판에 앉아 오늘 배운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렇게 뜻이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공부하는 전공에 대해 애정이 없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되어서 나 자신이 누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거다. 그 고뇌가 얼마나 치열한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아주 낯선 세계에 외딴섬처럼 똑 하니 떨어진 기분이다. 그래서 영화(「레이디버드」)에서처럼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밖에서 그 해답을 찾는 걸 포기한다. 오히려 그 촌스런 고향(영화에선 ‘새크라멘토’)에 그리움을 느낀다. 정작 그 해답은 자기 안에 있는 거다. 내가 누구인지, 세상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까지도 모두 내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매일 더 내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피라미드 중앙에 왕의 무덤이 있는 것처럼 내 가장 중심에 있는 보석(?)을 찾고 싶다. 보석이 아니라 원석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까. 이 영화에서 그레타 거윅의 연출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작은 아씨들」은 참 많이 기대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기대만큼 재미있었다. 누군가의 가정을 들여다본다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다. 관음증 환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과 개성을 조밀하게 관찰한다. 영화에서는 네 딸이 모두 저마다 다른 꿈을 꾸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다. 더군다나 로라 던도 나온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광란의 사랑」(1990)에서 그녀는 리즈의 미모를 뽐낸다. 젊었을 때 로라 던은 정말 예뻤다. 거기에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까지 …. - 아! 메릴 스트립도 있다. - 영화를 보는 내내 흐뭇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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