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uentin Tarantino ; 핏빛. 복수극. 통쾌함 >
그는 약속대로 정말 열 편만 찍고 영화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겐 정말 비극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그는 영화 주연이나 조연으로도 많이 출연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과는 생각하는 결이 다르고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남다르다. 그의 영화들은 내가 소설을 쓰는 데에 많은 영감을 줬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연극처럼 몇 장이나 챕터들로 나뉘어서 전개될 때가 많다. 특히 초창기 영화에선 그런 면들이 더 많다.
언젠가 타란티노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불 같이 화를 내는 영상을 본 적 있다. - 이 영상은 이미 꽤 유명하다. - 그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연출에 대해서 기자는 물었고, 타란티노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걸 거부했다. 언뜻 보기에 타란티노가 굉장히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타란티노가 정말 지혜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영화와 현실이 엄연히 다르다는 걸 알았던 거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즐겁기를 원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던 거다. 타란티노는 이러한 영화적 카타르시스가 오히려 우리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믿었다. 일리가 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아마 타란티노를 매우 싫어할 거다. 그러나 눈을 들어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 나쁘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전과 달리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다. 이건 마치 이런 논쟁과 비슷하다. ‘영화와 소설에서 꼭 선정적인 섹스 장면이 필요 한가’라는 질문처럼. 나도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 껄끄러웠다. 그런 선정적인 연출들이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염려 때문에 레이팅(rating) 시스템이 도입된 것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사실적인 섹스 씬을 집어넣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히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게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담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렇게 말하자면 최근에 이슈가 됐던 「조커」(2019)도 반사회적인 내용으로 인해 상영불가 조치가 취해졌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람들과 평론계는 오히려 이 영화에 극찬을 보냈다. 반사회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단순히 예술의 한 일부라는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예술세계이다. 우리는 이걸 꼭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타란티노 영화에선 복수극이 거대한 주제가 된다. 우마 서먼을 보면서 많은 여자 아이들이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킬 빌」 시리즈는 통쾌하다. 여전사의 꿈을 꾸기에 충분하다. 나는 아직도 「펄프 픽션」(1994)에서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가 함께 춤추는 장면을 흐뭇하게 떠올린다. 그 춤 선이 너무 재밌어서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본 기억이 있다. 존 트라볼타가 이렇게 춤을 잘 추는 배우였는지 그때 알았다. 「토요일 밤의 연기」(1977)에서 트라볼타의 그 멋진 하이라이트 춤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상이다. 비지스의 <Stayin’ Alive>가 곁들여진 이 춤은 이후에 나오는 모든 댄스의 시초가 된다. 얼마 전 다시 스타덤에 오른 가수 양준일 씨도 자신의 춤이 트라볼타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에 보았던 흑백 바탕의 「씬 시티」(2005)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봐왔던 영화들과는 너무 달라서 놀랐다. 데뷔작이라고 불리는 「저수지의 개들」(1992)은 지금 다시 봐도 세련됐다. 그의 영화에선 피가 홍수처럼 흐르고 튄다. 난도질당한 것처럼 여기저기로 흐른다. 그런 선홍색 바다가 오히려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분명히 현실과 너무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건 모든 사람들이 이미 타란티노라는 새로운 장르를 인정했기 때문이어서 일 것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8)에서 크리스토퍼 왈츠라는 명배우를 알게 되었고,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선 디카프리오의 명연기를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진짜 피가 흘리는 걸 참고 연기했다는 거 아닌가. 「헤이트풀 8」에선 사무엘 잭슨이 대단한 배우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너무 재밌고 웃기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마지막에 브래드 피트가 주먹질을 할 때이다. 아, 통쾌하다! 샤론 테이트가 정말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특히 핏불 테리어가 악당의 거시기를 뜯는 장면은 너무 웃겨서 보다가 쓰러질 뻔했다. 갑자기 나도 저런 핏불 하나 키우고 싶어 졌다. 또 다른 하나는 중간에 디카프리오가 연기를 하다 실수를 해서 자신을 자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도 너무 웃겨서 입 안에 고여 있던 침을 밖으로 뿜을 뻔했다.(웃음) 타란티노 영화들 중에서 뭐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영화들이 다 명작이어서 뭐가 더 특출하게 좋다는 건 없는 것 같다. 모든 영화들이 신선하고 재밌다. 그래도 브래드 피트가 나온 영화가 좋다고 말해야 할까. 어쨌든 타란티노는 무조건 영화계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모든 영화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