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흰머리와 함께 살아가는법

《감정이 머리에 남는다면》 시리즈

by 선혜

이 글은 《감정이 머리에 남는다면》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흰머리는 내가 지나온 감정이 몸에 새겨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1. 흰머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

요즘 들어 거울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반짝이는 이목구비도, 또렷한 눈빛도 아닌—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늘어나는 흰머리 한 가닥.

처음엔 그냥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 넘겼다.
하지만 그 한 가닥은 곧 두 가닥이 되고,
이젠 미용실에 염색하러 가는 날이
스케줄에 당연히 포함되어버렸다.

나는 아직 스물아홉살이다.
누군가에겐 한창이고, 누군가에겐 애송이일 나이.
그런데 왜 이리 머리카락은 빠르게 ‘나이’를 알아채는 걸까?

의사들은 말한다.
멜라닌 세포가 기능을 잃으면 다시 되살아나지 않는다고.
피곤해서, 스트레스 때문에,
어쩌면 유전적으로 일찍 지쳐버린 내 색소세포들.
그 애들이 조용히 일을 멈춘 결과가 바로 이 흰머리란다.

엉뚱하게도,
나는 이 흰머리들에게 자꾸 말을 걸게 된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계속 살아냈잖아.”
“넌 내가 버틴 시간의 증거야.”

어쩌면 흰머리는,
몸이 나 대신 기억한 시간들이다.
내가 잊어버리려 했던 외로운 날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무너졌던 순간들.
그 시간들이 한 올씩 머리카락이 되어 남은 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오늘도 염색을 하러 간다.
흰머리가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걸 어쩌겠는가.
프로페셔널한 모습 속에 나의 흔들림은 숨기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흰머리도 나의 일부고,
그 안에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담겨 있다는 걸,
그리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도록.

“흰머리가 생겨버린 게 아니라,
흰머리조차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살짝 눈물겹게 멋을 낸다.







《감정이 머리에 남는다면》 시리즈

2편: 감정은 머리로, 아픔은 몸으로 (업로드 예정)

3편: 꾸밈은 방어다 (업로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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