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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F Feb 16. 2024

추억이라 쓰고 낭만이라 읽는다

episode 7 : 여행과 동심의 낭만을 품은 방랑자, 프리랜서 진선주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다양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글과 영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는 인터뷰팀 ONF입니다.

     

한 사람의 ON과 OFF를 함께 조명하며

그 고유한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ONF의 의미이자 목적입니다.

     

ON: 직업, 일, 사회적 시선에 노출되는 대외적인 모습의 '나'

OFF: 일을 제외한 일상, 휴식, 다소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




Episode 7 :  모험의 '시작’


밝은 연두색의 니트가 자연스럽던 진선주 작가와의 만남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마치 이번 인터뷰 질문의 물음표는 진선주 작가로 시작해 마침표는 나에게 주어진 것 같았다. 옷차림처럼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그녀의 성격과 말투, 분위기는 자연스레 날 인터뷰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실린 목소리는 이야기에 흥미를 더해주었다.

      

‘추억을 써 내려갈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

     

진선주 작가의 삶의 모토이자, 그녀를 설명함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표현이다. 텍스트의 표현 그대로 그녀의 스토리텔링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와 여행 작가의 세계를 오가며 ‘프리랜서가 살아내는 삶’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러한 그녀의 강인함과 확고한 의지에 대해 존경과 감동을 넘어서서 나 스스로에게까지 많은 생각과 질문을 갖게 되었다.


세상 그리고 사람에 관심과 사랑이 많은 이가 열정으로 빚어낸 소소하면서도 웅대한 에피소드를 ONF 독자에게도 전해보고자 한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보물섬을 발견하듯,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하는 유의미한 추억의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본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ONF 구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편집 디자이너와 여행 작가를 겸업하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진선주입니다.



What is your ON?


1. 편집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면서 온라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기록의수록]을 운영하고 계시죠.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 함께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다루시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우선 본업으로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데요. 프리랜서로서 디자인 일을 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완전한 프리랜서로 살던가 아니면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게 1인 기업방식으로 살던가. 전자를 택해서 일을 지속하려니 세금 납부 방식도 다르고 아무래도 좀 어렵더라고요. 어쨌든 디자인으로 프리랜서 일을 쭉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새로운 키워드를 잡고 제대로 해보자’ 하고 기록의수록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죠.

여기서는 주로 지구와 사람에 초점을 두고 인쇄물을 다루는 편집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서 행사 포스터, 현수막, 리플렛 등을 다루면서 전체적으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또 제가 대학 시절 때부터 책 디자인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정부 공공기관이나 사단 법인 재단에서 만든 보고서, 매거진, 월간지, 아카이빙 북 등 출판업과 관련해서 인쇄물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록의수록 페이지
책방에서 발견한 진선주 작가의 표지 디자인 작업물


2. 여행 작가로서 뉴스레터 'MOA'를 통해 주기적으로 새로운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중이신데, 나의 경험을 비롯해서 누군가의 경험까지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했던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이드 업으로 여행 작가 일을 하면서 MOA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궁금증 때문이었어요. 우선 여행은 여러 카테고리로 나뉘어있는데요. 예를 들면, 배낭여행, 관광 여행, 역사 여행, 식도락 여행 등등이요. 그중 저처럼 배낭여행을 하는 분들은 여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지 궁금했어요. 전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와는 또 다른 배낭 여행자들은 여행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비슷하거나 같을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여행을 아무리 좋아해도 카테고리가 다르면 공감대도 달라지거든요.

결과적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글을 발행하면서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었어요. 같은 여행 테마를 지닌 분들이라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재밌게 연재 중이에요.     



3. 브런치 작가 소개 문구를 ‘여행과 동심의 낭만을 가지고 방랑하며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셨죠. 창작자로서 여행과 동심의 낭만을 전달하는 방법이 궁금해요.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관찰 그리고 기록이요. 저는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관찰을 하면 그때 당시 상황의 냄새나 분위기 이런 것들이 글 쓸 때 생생하게 떠올라요. 기록도 여행 당시의 기록과 돌아와서의 기록은 느낌이 되게 달라요. 한국에 돌아오면 또다시 삶이 달라지잖아요. 흐름이 바뀌면서 생각도 달라져요. 그렇게 수시로 기록하다 보면 제 생각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죠.

특히 나중에 되돌아볼 때 지나온 경험들이 ‘생각보다 더 좋았구나’ 또는 ‘이런 일이 있어도 내가 괜찮을 수 있구나’를 느끼게 돼요. 그 당시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흘러 소중한 경험이 되고, 도움과 환대도 많이 받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비록 스쳐 지나가는 순간일지라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기기 위해 글도 쓰고 사진이나 영상도 남기면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주어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려 노력해요. 냄새, 흘러나오는 음악, 풍경.. 무엇이든지요. 그러고 나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때 이런 저만의 방식으로 그때 느꼈던 경험을 살려 글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관찰과 기록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집중하는 것

극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인터뷰를 나누다 홀로 처음 떠났던 여행지인 목포에서의 순간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낯선 장소에 내던졌을 때,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던가?

     

인터뷰를 마친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펼쳐 목포 바닷가 앞 카페에서 적은 추억을 다시 마주했다. 시간이 흘러 바래진 기억을 한 발치 멀리서 바라보니 사뭇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때 느꼈던 불안과는 달리 나는 이미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쩌면 불안과 걱정을 애써 지워나가기 위함이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노트에 적힌 낯선 풍경의 묘사와 세세한 감정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마치 모든 감각기관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려는 듯 나름의 방식으로 여행을 꽤 즐기고 있었다. 평화광장 벤치에 앉아 구경했던 길가의 사람들과 윤슬이 아름다웠던 바다의 짠 내음, 유독 차가웠던 바람결이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그러다 문득 쓸쓸한 마음이 찾아오면 유일한 말동무인 속마음이 내게 말을 걸어와 복잡한 미궁 속의 대화로 빠져들곤 했다.

     

충동적으로 떠났던 여행에서의 나는 그저 두려움 투성이었고 선택에 대한 의심의 반복은 끊이질 않았지만, 기록은 관점을 달리 보게 해 주었다. 과거의 나는 걱정에 휩싸여 얼마나 단조로운 삶에 갇혀 있었는지, 그리고 생각보다 더 강인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진선주 작가의 말에 지난 경험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새로운 의미를 새기게 되었다. 외로움은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일 뿐이었고, 외로움을 껴안고 나면 그것이 곧 나에게 손을 내밀 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여행이 주는 깨달음과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은 추억에 소중함까지 불어넣어 주었다.



What is your ONF?


4. 작업은 작가의 삶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어요. 진정성 있는 작품의 출발선은 결국 나 자신의 정체성 찾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작가님께서는 작업물이 본인의 어떤 부분과 닮았는지, 어떤 성향이나 취향이 묻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지구나 환경 같이 사회의 공적인 면에 관심과 사랑이 좀 많은 편이에요. 아기들도 되게 좋아해서 일요일마다 봉사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이런 제 밝은 성격과 관심사에 대한 애정이 작업물에서 전체적인 디자인 스타일로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밝은 채도 위주의 일러스트를 많이 쓰는데, 신기하게 평소 옷차림도 그래요. 무채색 옷을 즐겨 입진 않는데 디자인할 때도 보통 밝은 컬러를 자주 쓰더라고요. 의도한 건 전혀 아닌데 정신 차려보면 저도 모르게 그러고 있어요. 물론 외주 업체에서 특별히 제안이 있으면 제 취향을 자제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제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의뢰해 주시고 지속적으로 찾아와 주세요. 제 디자인은 색깔이 통통 튀고 그림체도 조금 귀여운 편이거든요. 그리고 깔끔하고 정교한 걸 좋아해서, 디자인에서도 뭔가 딱 떨어지는 걸 선호해요. 이런 부분에서 바라보면 작업 스타일이 제 성격이나 취향과 닮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5. 여행 과정 중에는 많은 변수를 맞닥뜨리는 만큼 다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도 하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지요.     


어디선가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 항상 ‘쿠바 여행’이라고 답해요. 그전에 이미 유럽 여행에서 수많은 변수를 겪어봤던 터라 나름의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일을 겪었죠.


대학생 시절, 정확히 9월 중간고사 기간 때였어요. 시험 보기 전에 미리 준비해놔야겠다 싶어서 비행기 표 예매를 했는데 갑자기 부모님도 같이 가고 싶다 하셔서 취소하고 재예매를 했는데요. 보통은 일주일 뒤면 취소 처리가 되는데 안 되는 거예요. 쿠바는 직항이 없어서 유럽 쪽 외항사를 통해 예약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처리가 별로인 곳으로 악명 높더라고요. 정말 감사하게도 아시아나에서 도와주신 덕분에 연락이 닿아 얘기는 해볼 수 있었지만 결국 설득이 안 되어 100만 원 정도 손해 보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갔어요.

하지만 불길의 징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죠. 하필 또 코로나가 터져서 위생 장갑이랑 마스크 끼고 약 30시간을 걸려 정말 힘겹게 도착했는데 이번엔 또 현지 공항에서 입국심사 허가를 안 시켜주더라고요.

결국 1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겨우 쿠바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어요. 시작부터 너무 다사다난해서 벌써 지쳤을뿐더러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쿠바랑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여행의 시작은 보통 설렘으로 가득한데, 도중에 포기하고 싶진 않으셨나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공항 나가자마자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거 있죠? 도시 분위기가 너무 제 스타일인 거예요. 쿠바는 일반적인 관광 국가는 아니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데 그 특유의 아날로그틱함과 소도시가 주는 색다른 매력들이 지친 제 마음을 녹여주면서 이때부터 저의 진짜 낭만이 시작되었죠.


거기서 우연히 만난 분들이 계셨는데, 쿠바 땅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인지 신기하게 어딜 가도 자꾸 마주치는 거예요. 그 우연이 연속이 돼서 친구가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추억거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니까 그간의 고생이 달게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이거 보려고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구나.” 극과 극에 달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어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막상 되돌아보니 힘들었던 순간에 도움도 많이 받고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석양이 지는 쿠바의 바다 앞에서 느꼈던 그때의 감사함과 행복의 크기를 고스란히 담아와 지금까지도 가슴속 깊이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올드카의 아날로그틱한 감성 그리고 쿠바에서의 소중한 인연들
아바나 트리니다드
아바나 구시가지, 아바나 말레꼰


6. 그럼 타지에서 만난 수많은 여행자들과 나누었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번엔 작년 멕시코 여행 때 이야기인데요. 멕시코는 미디어에서 안전하지 않게 보이는 이미지가 있어서 가기 전에 좀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친구를 만들어서 가자 라는 생각으로 미리 동행자를 구했죠. 그렇게 언니 두 분과 여행 다니고 때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세 명이 다 같이 만날 수 있는 날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게 되었어요. 통창으로 예쁜 뷰를 감상할 수 있는 3층짜리 식당에 갔죠. 거기서 맛있는 치폴레랑 멕시코식 수프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도중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먹은 음식


“난 여행자들과 만나는 게 정말 좋아. 서로 잘 알지 못하고 당장 오늘 처음 만났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금세 가까워질 수 있잖아. 나의 뒷배경 같은 서론을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줄 수 있다는 게 참 행복인 것 같아.”     


언니들도 제 말에 너무 공감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흔히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처음 만나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MBTI나 취미와 같은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잖아요. 그것 또한 나름의 노력이지만, 나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애써야 하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배낭 여행자들은 아무리 처음 만나더라도 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돼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주제도 다양해지고, 여행이 아닌 다른 공통 관심사도 찾게 되고 그렇게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거예요. 그 순간 저희 셋이 애정 어린 마음을 진심으로 나누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어요.      


그러다 식당 안을 둘러보는데 북적임 속에 사람들 표정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통창 유리 너머로는 해가 예쁘게 저물고 있고요. 분위기 탓이었을진 모르겠는데,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저희와 같은 마음으로 각자 마주하고 있는 저마다의 인연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아름다운 장면 속 따스한 온기가 서서히 제 마음을 채워 주는 듯했죠.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 동행자들, 식당에서 담아 본 멕시코의 저녁 분위기


7. 디자이너와 여행 작가로 활동하며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진선주의 삶의 균형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었을지, 또는 프리랜서로서 겪는 불안정함에 대한 두려움의 고민이 있으실지 궁금해요.

     

저는 우선 이 삶이 너무 좋아요. 프리랜서로 활동한 지 이제 한 1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일하면서 느낀 게 디자인 일은 성수기 비수기 시즌이 있어요. 활동 초창기엔 이런 흐름을 잘 몰랐어서 처음 비수기 시즌 때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죠. 근데 생각만 해도 너무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아무리 그래도 프리랜서는 주도적으로, 제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현재까지 쭉 프리랜서로 지내는 중인데, 저는 늘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이라 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과 다르게 수익적인 불안함은 크게 없나요?     


솔직히 없다면 거짓말이에요. 어쩌면 자유로움과 맞바꾼 조건이죠. 제가 다니는 프리랜서 모임이 있는데, 어느 날 15년간 활동하신 분에게서 한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 마인드가 바뀌었어요.


“프리랜서에겐 정착이란 없다.” 

이 말에 너무 공감이 갔어요. 저는 보통 혼돈의 시기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는데, 저와 달리 이분은 묵묵히 그 고통을 감내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어른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다행이면서, 프리랜서로서 큰일을 해내신 분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 더 위로가 됐죠.


그 이후로 이제 수익적인 불안성은 받아들이고 있어요. 직장에 대한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니까요. 무엇보다 이 부분만 제외하면 다 만족해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도 떠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작년 연말회고 때 프리랜서로 장기 활동을 하려면 하나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무언가 한 가지에만 의존할수록 불안함이 드는 것 같아요.

여행 작가 일로 말하자면 이런 사이드 업은 또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수익으로만 따지면 적자지만 신기한 게 오히려 기회는 더 많이 생겨나요. 기고 작업 문의가 들어올 때도 있고, 지금 인터뷰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회라고 볼 수 있겠죠. 이렇게 기회의 방향을 열어두니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불어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불안함보단 확신을 갖게 되고요. 이게 프리랜서의 불안정함을 달래는 저만의 방식이에요.



작가님의 진솔한 답변을 되새기며 문득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삶’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치 어떠한 규범이라도 존재하는 듯, 그릇된 가치판단의 기준에 사로잡혀 나의 마음은 도리어 압박감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움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규정한 행복의 기준에 맞추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다 실패의 좌절을 겪기도 하고 우연한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하는 것. 그런 우여곡절을 지나 성공의 경험과 확신이 모여 비로소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라야 진정 안정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기준인지도 정확히 모를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고 느껴질지언정 꿋꿋이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따르고, 불안 속에서도 그렇게나마 잠시 행복에 잠겨보는 것이 진짜 나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엔 어차피 명확한 정답은 없으니까.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유혹적인 경험담과 그 루트만 존재할 뿐이라고 본다. 인생은 장기 여행이라지만 주변의 소음에 휩쓸려 살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소음에 섞인 수많은 변수와 유혹의 풍파를 지나 내가 바라는 목표지점을 향해 도전해 볼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혹여나 잘못된 믿음에 지배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What is your OFF?


8. 나에게 초능력이 생겨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된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보고 싶으신가요? 과거, 현재의 다른 공간, 미래까지! 모두 좋습니다. 

    

음.. 전 과거로 가고 싶어요. 우선 미래는 늘 좀 알기 싫어하는 스타일이에요.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요. 현재도 좀 그런 게 전 제가 하는 선택에 후회하는 게 싫어요. 무언가에 대한 최선의 선택으로 지금 여기 있는 건데 다른 공간에 있는, 그러니까 다른 선택 안에 있는 나를 알게 되는 건 좀 꺼려진 달까요. 내가 있는 현재의 선택이 성공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경험상으로는 제일 베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과거가 좋아요. 인생은 추억팔이하면서 사는 재미가 있잖아요? 가끔 사진첩을 열어 그 순간으로 돌아가 푹 젖어드는 것처럼, 전 그런 낭만을 너무 좋아해요. 무언가를 추억할 거리가 있다는 것. 그런 낭만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니키드의 키워드가 ‘동심’인 것처럼요. 예를 들자면 어릴 적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서 사촌들과 시골 분위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는데 저에겐 그런 순수한 추억들이 너무 소중해요.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는 게 뭐가 좋냐 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 오히려 돌아갈 수 없어서 더욱 값지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때를 떠올리면서 추억하는 것뿐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금 낭만을 품으며 만족하는 그런 삶이 좋거든요.  

   

* 그리니키드는 진선주 작가의 여행 이야기를 담은 동심 그림일기이다.

https://brunch.co.kr/magazine/with-greeneekid



9.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곧 나를 자세히 보게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얻은 성공의 기쁨과 실패의 좌절 속에서 어떠한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쿠바여행 때만 해도 이미 실패가 되게 많았어요. 지금의 프리랜서 자리에 오기까지도 이미 세 번의 직장을 거쳐 왔고요. 특히 마지막 회사 다닐 때가 너무 안 맞아서 무기력함까지 찾아왔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주도적인 성향이었어요. 그래서 직장생활 특유의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좀 싫어도 어느 정도 감내하면서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전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그 당시 제 가장 큰 고민이 ‘남들 다 하는 정상적인 걸 왜 나는 못할까’였죠. 주위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제 마음은 붕 떠있는 것 같고 남들 다 하는 걸 나는 자꾸 못하니까 결국 저를 탓하게 되더라고요.

그때가 평소와 달리 유일하게 제 스스로를 놓게 됐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자존감도 능률도 모두 떨어지니까 정말 살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죠. 앞으로 뭘 할지 준비도 없이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퇴사했는데, 어쩌다 친구 덕분에 속초 한달살이 체험 기회가 생겨 거기에 갔다가 프리랜서 분들을 많이 뵙게 된 거예요. 그러다 마음이 이쪽으로 기울게 돼서 도전해 보았다가 그때 깨달음을 얻었어요. 내가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보시다시피 이 모든 과정에 실패는 항상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제 마음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고, 제 스스로가 진짜 무얼 원하는지 따라가다 보니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 실패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오히려 성공의 경험은 생각보다 머리에 깊게 남지 않아요. 근데 실패의 과정은 정말 세세하게 기억나거든요. 그런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제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확신을 되찾아가면서 진짜 자유를 얻게 되니까 되돌아보니 그 실패의 과정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속초 한달살이 중 가진 낭독회 시간


인터뷰를 마치며


10.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으신지, 그리고 끊임없이 나아갈 진선주 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첫 번째는 항상 추억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에요. 한마디로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굴곡이 좀 지더라도 나중에는 다 추억거리로 삼으면서 다채로운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작품 <삶의 한가운데> 중 니나라는 인물처럼 사는 거예요. 니나의 힘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초연함이 제 마음을 울렸거든요. 전 아직 완벽하게 성숙한 사람은 아닌지라 가끔은 투덜거리고 투정 부리기도 하는데 니나는 달라요. 아무리 궂은일이 일어나더라도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최선을 다해 겪어내면서 결국엔 극복과 함께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요. 너무 멋있고 매력적이죠. 전 원래 이상형이 전무하던 사람인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처음으로 롤모델이 생겼어요. 니나처럼 외관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스스로의 삶을 멋지게 살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멕시코에서 자유를 즐기는 진선주 작가의 모습

그리고 제 스스로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런 멋진 삶을 살아가면서도 절대 콧대 높아지지 말라고. 이 세상의 나와 다른 모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요.





<Editor's Note>


지난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값진 일이다. 추억거리를 품고 살아가는 일. 특히나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가치의 깊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추억은 단순히 경험의 가치를 넘어 현재의 나와 비교대상으로서 반성과 함께 성장의 전환점이 되어준다. 그렇게 경험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곧 낭만이 된다. 어제의 나는 조금 미성숙하고 서툴렀지만 지나고 나면 수많은 경험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되새기며 나아가 더욱 빛나는 사람으로 발전해 간다.


목포에 가기 전만 해도 내가 얼마나 용기 있고 강인한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매번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새롭고 낯선 곳에서의 나는 유연했고, 정적인 감정도 꽤 즐길 줄 알았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모여 어느새 나에게도 변화를 일구어주었고, 이젠 가슴 한 구석에 소중하고 낭만적인 추억 거리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겐 사소할지라도 나에게는 특별한 이야기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가는 맛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그런 에피소드가 담긴 삶의 퍼즐 조각을 하나둘씩 모으다 먼 미래에 하나의 다채로운 그림으로 완성해내고 싶다. 그러다 예전의 나와 같은 고민과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는 이를 만나 그에게 위로 한 마디쯤 선물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새로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


진선주 작가의 이야기는 나에게 그런 감동의 여운을 남겨주었다. 독자 분들도 진선주 작가의 메시지로부터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처를 느끼고, 복잡하게 얽힌 삶을 풀어나갈 실마리를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을 이곳에 남겨두고 인터뷰는 여기서 마친다.



진선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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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8ZF9MW3hoY?si=6YRmwDtJHKg8jQ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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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김예령,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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