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뒤를 예측해야 된다구요

상품기획 MD.
영업팀에서 인사이동 된 후,

본격적으로 맡게 된 직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치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주로 매장관리를 했지만,
상품기획 MD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간, 감각, 언어로 움직였다.


MD라고 하면 하나의 직무처럼 들리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여러 갈래로 나뉜다.


브랜드(상품기획) MD
: 어떤 상품을 몇 개의 스타일로 어떤 소재를 써서 얼마나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


리테일(영업) MD
: 만들어진 옷을 어느 매장에, 어떻게 배치할지를 고민하는 사람


바잉(Buying) MD
: 해외 브랜드 상품을 들여와 시장에 맞게 조율하는 사람


생산 MD
: 옷이 실제로 생산되는 과정과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


이 분류는 해당 브랜드가

제품을 직접 제작을 해서 판매하느냐,

남의 제품 혹은 해외의 제품을 가지고 와서

판매를 하느냐에 따라 나눠진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모두 상품을 자체적으로 제작했기에

나는 이 중에서도 ‘상품기획 MD’,
상품의 가장 첫 출발점에 서 있는 역할을 맡았다.


상품기획은 1년 반 전부터 시작된다.
지금이 여름이라면,
나는 내년 겨울의 옷을 구상해야 한다.


이건 단순히 ‘예측’의 문제가 아니다.
1년 반 뒤의 계절,
그때 사람들의 기분,
그때 입고 싶은 옷의 감정까지 상상해야 한다.


기획의 시작은 늘 시장조사다.

국내든, 해외든.
거리든, 편집숍이든, 런웨이든.

실제로 보고, 만지고, 입어보고,
지금의 흐름 안에서, 미래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시장조사를 할 때는 항상 디자이너와

한 조를 이루어 함께 간다.


사실 시장조사는
‘지금 이 시장에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보러 가는 일이기도 하다.

완전히 새로운 걸 발명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이 흐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내 언어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샘플을 구매한다.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한 건 소재와 디테일이다.


특이한 원단, 독특한 봉제 방식,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몸에 닿는 감촉, 원단이 움직이는 소리,
단추 하나의 감성.


그걸 느끼고, 해체하고, 분석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상품이 태어난다.

(디자이너들의 감성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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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패션회사에서 만드는 옷이
모두 완전히 ‘창조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그대로 베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좋은 레퍼런스는 창조의 연료가 된다.


티셔츠 하나라도,
거기 붙는 작은 로고 하나로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격이 천차만별이 되는 게 패션이다.


이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제품’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성, 철학, 정체성, 브랜딩,
그 모든 게 옷에 녹아들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브랜드가 있다.
멋진 브랜드도, 멋진 제품도 정말 많다.


그 안에서
“어떻게 우리 브랜드 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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