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MD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차별화’였다.


그동안 영업팀에 있을 때
어디를 가든 우리 매장 옆엔
꼭 경쟁 브랜드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마케팅 서적에서 읽은 가장 기억나는 문구가 있다.


나이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


아이들이 닌텐도 게임에 빠지면
밖에 나가질 않는다.
그러면 운동화도, 옷도 안 산다.

즉, ‘운동’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사라지는 거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경쟁은 항상 업계 안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정치, 경제, 날씨, 유행, 기분.
수많은 요인들이
패션업계를 흔들 수 있다.


어쩌면 패션 브랜드는
생존력 하나로 버티는
파리목숨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다.

"우리가 진짜 잘하는 건 뭘까?"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무언가가 있을까?"


그게 없다면 고객은 그냥 지나친다.
이 브랜드가 아니어도 되는 수많은 이유들 속에서
굳이 우리를 고를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굳이 우리를 고를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아이덴티티를 찾고 싶었다.
어느 브랜드처럼
이름만 들어도 제품이 그려지는 그런 확실함.


폴로 랄프로렌의 셔츠,
노스페이스의 패딩,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


그 브랜드들이 가지는 상징성.


우리 브랜드엔 그게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걸 만들고 싶었다.


영업팀에 있으면서
수많은 고객을 관찰해 왔다.

어떤 스타일을 찾고,
어떤 제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고,
무엇을 결국 구매하는지.

그 데이터들이 내 안에 쌓여 있었다.
그걸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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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어느 날,

멍하니 브랜드 로고를 보다 말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로고 컬러가 이렇게 예뻤나...?”


우리는 제품에 다양한 색을 썼지만

정작 브랜드 로고의 컬러는
제품 속에 제대로 녹아 있지 않았다.


"이거다!"

브랜드 컬러를 제품에 입혀보자.
그 컬러가 ‘우리’를 상징하게 만들자.


그날부터 나는
최근 유행하는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뜯어보고,

컬러를 대입하고,
감성적인 이름도 붙여봤다.


그리고 바쁜 디자이너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했다.


“이거 같이 한번 해볼 수 있을까?”

디자이너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다.

바빴을 텐데 도와줘서 아직도 고맙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제안을 팀장님에게 보여드렸다.

그런데...

반응은, 시큰둥.


“흠... 그래, 뭐...”


내가 뭔가 놓쳤나 싶었다.
그래, 기획안을 정식으로 작성해야겠다!


기획안은 명확해야 한다.
그래서 PPT에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PPT를 띄웠을 때

화면이 복잡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그 대신 이미지,
한 장의 이미지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보여주고,
그걸로 통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게 하고 그게 대해 나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마음에 드는 이미지 한 장 찾기가
너무 오래 걸렸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사진 한 장 고르는 데 한 시간. (야근각)


도대체 왜 마음에 드는 이미지들은
다 유료인가!!


그렇게 며칠을 밤새워 만들고
드디어 완성된 기획안.

다시 팀장님에게 가져갔다.
이번엔 “좋다”는 말이 나왔다.

(후... 다행이다)


그리고 부장님께 가져갔다.
반려.


내 안에서
뭔가가 ‘툭’ 하고 터졌다.

오기가 생겼다.

그날 이후 나는 꿈에서도 기획안을 쓰고 있었다.

해 뜨기도 전, 사무실에 제일 먼저 들어가(분노의 출근)
이걸 해야만 되는 이유를 수 만 가지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기획안.
결국 통과됐다.


물론, 그 후엔
“통과”보다 더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건 또 다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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