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디어라도 세상에 상품으로 나오기 힘든 이유

정말 많은 열정을 쏟아부은 기획안이었다.


수없이 검토하고, 자료를 찾고 설득하고

반려되고 다시 수정하고 또 수정한 끝에
마침내 통과된 기획안이었다.


“이제 제품만 만들면 된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회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획안이라도,
한 사람, 한 팀만의 결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른 부서와의 협력이 있어야 했다.


내가 기획한 제품은 부장님의 결정으로

긴급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했고

개발팀과 생산팀에서 가능하다고

통보해 왔다.


문제는 그 긴급함이
다른 부서엔 ‘갑작스러운 변수’가 된다는 점이었다.


영업팀, 마케팅팀,
VMD팀, 이커머스팀(온라인 운영)

이 제품이 출시되면
모든 부서와 연결되어 있다.


회사에서도 가장 입김이 센

영업팀은 다행이었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팀이라 나와 관계가 좋았고

영업팀 부장님은 흔쾌히

“좋습니다. 진행하시죠”

라며 지지해 주셨다.


이커머스팀도 환영이었다.
새로운 제품이 올라가면 페이지를 만들고 등록만 하면 되는 상황.

물론 제품 촬영을 해야 하지만 팔만한 제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마케팅팀과 VMD팀은 달랐다.


VMD팀은 매장 인테리어, 집기 도구 제작까지 담당하는 팀이다.
이 팀의 부장님은 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마케팅팀 부장님은 경력이 화려했다.
능력 있는 분이었지만,
그만큼 확신 없는 일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두 분은 생각의 방향이 잘 맞는 사이였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회의 자리에서 강력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지금까지 짜둔 마케팅 일정과 계획이 전부 수정되어야 합니다.”
“예산이 이미 책정돼 있는데, 새로 편성해야 해요.”
“매장 집기 도구를 기획, 디자인, 샘플 제작, 전국 배포까지...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들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지만

몇 날 며칠을 밤새며 열심히 기획했던

나의 기획안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멈춰버릴 위기에 처했다.

christina-wocintechchat-com-Q80LYxv_Tbs-unsplash.jpg


결국 이 문제는 부사장님에게까지 올라갔다.
각 부서 부장님들이 차례로 의견을 말했다.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부사장님은 모든 부서장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상품팀 부장님에게 물었다.

“잘 팔 자신 있습니까?”


상품팀 부장님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부사장님.

우리 브랜드만의 로고 컬러와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의 대표상품이 될 수도 있는데
내년까지 출시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깝습니다.

바로 생산에 들어갈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한 달 뒤에 출시 가능합니다.


부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케팅 부장, VMD 부장.
상품팀 지원해 주세요.

예산은 제가 사장님께 결제받도록 할 테니
한 달 뒤 출시 일정에 맞춰 준비하세요.


그 한마디로,
반대하던 두 부서도 협조하게 되었다.
그렇게 멈출뻔한 나의 기획안의 제품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기획은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을.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이제,
제품이 매장에서 고객에게 선보일 날만 남았다.


전편

다음편


작가의 이전글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