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매장 오픈의 실체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실은 늘 복잡하고,
시작은 대체로 어렵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같은 상황이었다.
브랜드는 이제 막 시작했고,
나는 그 시작점에 서 있었다.


0에서 시작한다는 건,
들뜨기보다 묵직한 책임감이 더 크다는 걸 금세 알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카테고리,
처음 접하는 영역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책무가 있었다.


내가 담당한 것들은, 곧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첫 번째 매장 오픈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았다.


오픈 전부터 과제가 많았다.
어떤 상품을 어떻게 구성할지조차
확신보단 직감에 의존해야 했다.


아직 우리에겐
판매 데이터도, 고객 분석도, 브랜드 파워도 없었다.
오직 감과 경험만으로
모든 걸 결정해야 했다.


매장 오픈도 쉽지 않았다.

VMD팀이 없었기 때문에
매장 인테리어와 연출은 협력사에 의존해야 했고,
일정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미뤄졌다.


쇼핑몰과의 문제로 설계도는 계속 수정되었고

그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계속 터지면서

원래 오픈 일자로부터 한참 멀어졌다.


매장 오픈 지연으로 동반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것들을 처리하기에도 분주했다.


해당 쇼핑몰은 일반 고객이 있는 영업시간에는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대부분의 작업은 영업시간 후에 진행되었다.


그렇게 밀려 밀려 매장 인테리어가 완료되었고

그런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오픈하기 위해
본사의 몇 없는 소수의 직원들이
현장에 모두 투입됐다.


이 또한 영업시간 후에 투입되어

다음 날 영업시간 전까지만 할 수 있었으므로

낮에는 본사에서 일하고

밤에 매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인테리어 집기도구를 받고

설치하고 입고되는 상품을 받아

창고에 분류하고 매장 내에 걸고

진열대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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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기 도구뿐만 아니라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을 시간에 맞춰

받고 설치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야 했다.


매장 디스플레이는 다 해놓고도 고민해야 했다.

주력 상품이 고객에게 잘 보일 수 있는지

컬러 분류는 잘 되었는지

카테고리와 기획한 라인은 잘 정의되었는지

몇 번이고 바꾸고 위치를 변경하고

다시 설치하고를 반복했다.


이 모든 일들은 대부분 새벽시간에 진행되었으므로

본사 직원들의 피로도는 극심했다.

어떤 직원은 아예 근처에

숙소를 잡아버렸고 들고 온 속옷이 없어

사 입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집에 가서 잤지만

남들 출근하는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퇴근하고 있는 그 기분은 참 묘했다.

(물론 오후에 다시 출근했지만)

그렇게 모두가 손발을 맞춘 끝에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오픈 첫날,

고생을 한 만큼 애정이 쏟아진 곳이었다.

우리는 그 보상을 매출로 받고 싶었다.


주말 오픈이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브랜드가 있었나? 하며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다.

점심이 지나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고

우리 매장에 들어오는 이들도 꽤나 있었다.


매출을 올려야 했기에 본사직원들도 판매에 투입되었다.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열심히 설명했다.

고객을 설득(?)한 끝에 제품이 판매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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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매출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제품은 분명히 차별성이 있었다.
누군가 한 번만 써본다면,
입소문이 나기만 한다면,
분명 가능성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한두 달이 지났다.
매출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매장 오픈을 준비했다.

두 번째 매장도 비슷한 고생을 했지만

그나마 첫 번째보다는 좀 나아졌다.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해보았다 보니

누가 어떤 일을 맡으면 될지

눈빛만 봐도 척척 맞았다.


두 번째 매장부터는 순탄했고

네 번째 매장부터는 본사에서

인원이 투입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매장 오픈이 아니었다.

내가 담당한 카테고리에서
매출이 잘 나오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래서는 안 됐다.

이제 막 시작한 초기 단계이긴 하더라도

그렇다 해도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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