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 소재 특유의 말랑함.
물방울이 맺혀도 슥 하면 닦이는 표면,
기름이나 다른 액체에도 물티슈로 한 번이면
새것처럼 반짝이는 그 표면.
처음 이 파우치를 봤을 때,
‘그래, 이거다.’
그날 이후 나는 다른 모든 제품을 뒤로 미뤘다.
이 가방 하나에 브랜드의 사활을 걸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유튜브 트렌드부터 인스타그램 릴스,
블로그 리뷰 마케팅, 플랫폼 광고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실내에서 찍은 영상은 제품을 소개하는 정도였지만
맛깔나게 소개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전문 스튜디오나 전문가에게 맡기기에는
비용적인 부분이 많이 들었다.
직접 제품을 들고 해외로 나가(그래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저렴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하고 리조트의 야외 수영장에서
남들은 휴양지를 즐길 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온갖 자세를 다 취해가며 촬영했다.
(덕분에 선텐 효과는 좋았다)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편집하며 문구 하나,
배경 음악까지 열심히 찾아냈다.
실력이 안되더라도 노력으로 진심을 담고 싶었다.
비용도, 시간도 적지 않았지만
이 제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나의 존재 증명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우리의 제품은 조금씩 알려졌고
0에서 두 달간 멈추었던 판매 수량은 서서히 올라가
리오더를 3차까지 진행했다.
사용자 리뷰는 점점 쌓였고,
그 안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용법과 아이디어가 있었다.
거기에서 착안하여 고객들이 어떤 게 필요할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제품을 소싱해서
적정한 가격을 매겨 판매했다.
기쁨도 잠시.
문제는 너무 빨리 찾아왔다.
우리가 처음 소싱할 때만 해도
이 제품을 파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하지만 팔리기 시작하자,
똑같은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사실 우리는 소싱 단계에서 독점권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민 조건은 지금의 우리로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물량, 금액, 리스크 등 모든 게 벽처럼 앞을 막았다.
비즈니스는 감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우리를 믿어 달라”는 말보다,
‘얼마나 팔 수 있느냐’가 전부였다.
6개월 만에 우리는 드디어
그들이 요구하던 물량을 맞출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다른 이들이 같은 제품으로 시장에 들어와
가격 경쟁이 시작되었다.
경쟁업체들은 같은 제품을
우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다.
“이 가격에 남는 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브랜드를 걸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고민하며 지었던 이름마저 따라 했다.
우리는 이 제품에 올인했지만 그들은 다른 주력 제품이 있고
우리와 같은 제품은 그저 잘 팔리니 한번 팔아보기 좋은 제품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매출은 빠르게 꺾였다.
여름이 다가오고 성수기 판매를 기대하던 6월,
그래프는 거꾸로 흘러내렸다.
공동구매의 성공 이후,
여기저기서 공동구매 문의가 들어왔고
기세를 몰아 대량 리오더까지 했었지만
가득 쌓인 재고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이제,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방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외면해 왔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마침내 그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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