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브랜드 만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디자인은 나왔고 종이에 그려진 선들은 분명 내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종이는 제품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이 도면을 현실로 끌어낼 생산업체를 찾아야 했다.
문제는 나는 생산을 몰랐다.
기획자는 생산의 구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뛰어들어 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싶었다.
그동안 함께 일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던 선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예전에 EVA 관련 제품도 다루는 선배가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했는데도 예전처럼 반갑게 맞아줬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지금 내가 만들고 싶은 가방 사진을 보내며 물었다.
이런 타입의 EVA 가방을 만들고 싶은데,
소비자가를 O만원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가능할까요?
한국에서 만들어서 이런 제품을 그 가격에 팔려고?
절대 못 해. 그건 거의 원가 수준이야.
역시 한국에서는 가격 경쟁력 부분에서 쉽지 않았다.
선배는 대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EVA 전문 생산을 해온 분을 소개해줬다.
그가 보여준 기존 작업물들의 퀄리티는 내가 원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두 곳을 추천했다.
한 곳은 싸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곳.
한 곳은 비싸지만 품질이 좋은 곳.
우리 브랜드의 원칙은 늘 같았다.
가성비가 아니라, ‘높은 퀄리티, 합리적인 가격’
싸다고 품질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싼 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EVA 제품은 일반 가방처럼 봉제로 제작하는 것이 아닌
붕어빵처럼 제품을 만드는 틀이 있고
거기에 재료를 넣어 제품을 찍어내는 방식이다.
이 몰드(금형)를 제작하는 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심지어 억대까지 올라가는데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생산비용에 우리가 생각하는 상한선을 두고
중국 생산업체의 대표에게 견적을 문의했다.
생산 단가, 금형 비용, MOQ(최소 오더량)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정한 상한선에
어느 정도 맞아야 진행이 가능했다.
너무 초과할 경우 시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동시에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연락을 돌렸다.
예전에 거래했던 곳에도 문의를 해두었다.
견적서는 하나둘 도착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숫자들은 모두 비슷했다.
몰드 금액이 내가 생각했던 금액 보다 1.5배에서 2배 더 나갔다.
심지어 억대로 이야기하는 곳도 있었다.
제품 특성상 몰드를 하나로만 생산할 수가 없어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었다.(이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몰드비를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이 몰드비가 높을수록 우리 부담이 컸다.
그러나 생산단가가 높다면
소비자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아지고
그 부담은 고객에게 넘어가는 결과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저렴한 업체에서
진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예전에 거래하던 업체에서 견적이 왔다.
그들도 가격은 높았지만 이야기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퀄리티를 내 눈으로 확인한 곳”이었다.
그 퀄리티로 우리 제품이 나온다면 가능했다.
문제가 있었다.
MOQ(최소 오더량)
그들은 다른 업체 생산 수량의 두 배를
최소 오더량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생산 단가는 우리 제품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정해지겠지만
(나중에 이것이 큰 문제가 될 줄은 그땐 몰랐다)
그들이 제시한 생산단가는 좀 더 협상을 하면
합리적인 소비자 가격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말을 믿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생산 수량이 너무 많다 보니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창고 용량을 넘어설 것 같았고,
오더 금액도 너무 높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직접 생산 업체에 가서 부딪혀 보자.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어느 부분에서라도
협상이 되지는 않을까?
우리가 그들의 제품을 어느 정도 팔았으니
그런 부분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화면 너머의 공장에 견적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첫 제품을 위해 직접 협상하러 발로 뛰기 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게 성공의 시작인지, 혹은 또 하나의 실패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나는 드디어, 누군가의 제품이 아닌 우리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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