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표와의 협상, 샘플 앞에 다시 시작된 난관

by 베리피아 다이어리

중국 대표의 입에서 “그 직원, 어제 그만뒀어요”라는 말이 나오던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분노보다 희망이 먼저 스쳤다.


그동안 단가가 치솟고, 답장이 늦어지고, 말이 앞뒤가 안 맞던 이유가 조금은 이해됐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자, 드디어 ‘이제 진짜 대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에게 그간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담당자가 보낸 몇 시간 뒤의 답변, 나눈 모든 메시지,

오락가락하던 단가, MOQ(최소 오더량)까지

대표는 그중 아무것도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표정이었다.


그의 사무실에 도착한 우리는 뜨거운 차를 앞에 두고 앉자,

대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담당자와 나눈 메시지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는 한참 동안 내 휴대폰 화면을 넘겨보았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고, 표정이 굳어지더니 결국 조용히 말했다.


음... 담당자 태도, 정말 문제가 있었네요.


이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여 있던 답답함이 조금씩 풀렸다.
이제 협상할 타이밍이라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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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꺼내 단가 명세표를 다시 펼쳤다.


대표님, 저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금액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투명하지 않다’는 겁니다.

말이 계속 바뀌고,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이야기하고,
또다시 이 금액보다 높을 거라고 말로만 이야기하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제가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대표는 또 한 번 표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가격보다는 조금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남겨야 하니 너무 큰 폭은 어렵습니다.


나는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좋습니다. 단가는 대표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대신 MOQ를 절반으로 낮춰주십시오.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예상외로 단호하고 쿨하게 답했다.


좋습니다. 초도 물량 부담되시죠?
절반으로 줄이겠습니다.


그 순간, 속으로 환호했다.
단가가 조금 높더라도, 물량이 절반으로 줄면 우리의 부담도 절반으로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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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희망이 눈앞에 잡힐 듯했다.
'이제 샘플만 잘 나오면 된다.'
그 생각 하나로 다음날 공장으로 향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공장은 놀라울 만큼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새로 지은 건물, 자동화된 설비, 정돈된 작업대
상상 속의 공장과는 완전히 달랐고, 그만큼 안도감이 들었다.


사무실 테이블 위에는 우리의 첫 실제 샘플이 놓여 있었다.
숨을 들이쉬고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크기, 형태, 구조 전체적인 느낌은 괜찮았다.

몇 가지 디테일은 수정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컬러.


디자인 단계에서 팬톤 번호까지 지정해 맞춰간 색인데,
PC로 보는 것과 EVA 소재 위에 입혀진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한 컬러는 너무 희어져 생기가 없고,
또 다른 컬러는 멀멀해서 이도저도 아닌 색이었다.


모니터 위의 색과 실제 소재 위의 색이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다.


팬톤 색상표를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담당자와 색을 다시 맞춰가며
세세한 조정을 몇 시간이고 반복했다.


문제는 팬톤 색상표만 가지고는 실제 EVA 위에 올라간 컬러와

절대 정확하게 일치하는 컬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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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들은 새롭게 조정된 컬러 샘플을 보냈다.

사진 찍을 때 당시의 조명이나 빛에 따라 제품 컬러가 달라 보이기 때문에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공장 밖 햇빛 아래, 사무실 형광등 아래, 그림자가 생기는 각도에서
여러 버전의 영상을 보내왔다.


그러나 모든 영상 속 색이 내가 원한 ‘그 느낌’과는 달랐다.


아직도 딱 맞지 않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희망은 보이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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