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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 갔다 온 허서현, 영천 팀의 창단 첫 승리 이끌다

2025 여자바둑리그 1라운드 4경기 - 보령 VS 영천

by 이연

[1라운드 4경기 - OK만세 보령 VS 영천 명품와인]

경기결과.PNG 출처 : 여자바둑리그 홈페이지 https://w.baduk.or.kr/

영천 명품와인 2-1 승리!


OK만세 보령은 (내 평가 - 7점, 중상) 작년의 우승팀이고, 작년의 주전들을 그대로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지난 시즌에 극심한 부진을 보였던 이슬주(3승11패). 물론 포스트시즌 들어서는 3승3패로 제 몫을 해내긴 했지만, 지난 시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김민서와 김다영 두 사람이 '항상' 이겨야만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두 번째 불안요소는 김민서와 김다영 '원투펀치'가 타 팀의 주장인 김은지, 오유진, 김채영 등과 같은 '압도적인 포스'를 갖추지는 못했다는 것. 탄탄한 저력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왠지 상대 팀 주장들과 붙는 것은 좋을 것 같지 않다. 이슬주가 반타작 이상을 하며 제 몫을 충실히 해준다면 이 두 가지 불안요소가 모두 해결될 것이다.


영천 명품와인은 (내 평가 - 4점, 중하) 신생팀으로, 다른 팀이 보호지명을 하고 남은 선수를 끌어모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2지명 김은선이 여러 차례 보여주었던 랭킹을 초월한 활약이 또 나오거나, 용병 양쯔쉔이 자주 출전해 승리를 챙겨준다면 기존의 평가를 전면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이번 경기의 첫 승리는 영천의 주장인 허서현에게서 나왔다. 초반 이슬주의 대착각으로 쉽게 필승의 형세를 만들었던 허서현은 중앙에서 무리한 공격을 시도했다가 요석이 잡히며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많이 유리했기에 차이가 미세했고, 이슬주의 끝내기 실수를 찔러가 끝내 반집승을 거둬냈다. 허서현과 영천의 입장에서는 다 이긴 판을 도둑맞을 뻔했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결과였다.


허서현이 귀중한 1승을 도둑맞지 않고 지켜냈을 때쯤, 장고대국인 1국의 김민서 - 양쯔쉔 판의 형세도 요동치고 있었다. 백을 잡은 영천의 양쯔쉔이 초반에 상대의 지저분한 행마를 응징하며 크게 우세해졌지만, 김민서가 어려운 곳을 찔러오자 느슨하게 중앙으로 둘러치면서 집 손해를 크게 보는 바람에 만만찮은 정도까지 따라잡히고 말았다. 양쯔쉔은 엷음을 감수하고 실리를 챙기며 승부수를 날렸지만, 김민서의 예리한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마침 카메라가 비추던 허서현의 대국이 끝난 직후였기에 김민서의 한 수에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헤매던 양쯔쉔의 손길이 그대로 비춰졌다. 조금 더 수를 이어가던 양쯔쉔은 항복을 선언했다. 스코어는 1:1이 되었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승부판이 된 김다영 - 김은선의 3국으로 쏠렸다. 초반부터 팽팽하게 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후반까지도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며 양 팀 모두를 긴장시켰다. 승부를 결정지은 실수는 김다영에게서 나왔다. 시간이 없어 당황한 듯 시간연장책을 연거푸 사용한 김다영은 우하귀 큰 끝내기로 손을 돌렸다. 그 순간, 중앙의 약점을 진작부터 노리고 있던 김은선이 멋진 축머리 수를 찾아냈고, 축으로 잡혀있던 백의 요석이 살아나오며 승부는 결정되고 말았다.


이렇게 영천이 2-1로 승리를 거두며 나도 드디어 한 경기 전체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주변에 이걸로 자랑할 사람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메인 대국]


2국 속기 : (흑)허서현 (백)이슬주


공격적인 기풍의 선수들은 '상대가 어려워할 수'라는 판단이 서면 모든 수가 보이지 않더라도 '고'를 외치는 반면, 안정적인 행마를 선호하는 선수들은 '자신이 납득 가능한 수'를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만 판단 능력이 떨어져서 차선책으로 안정적 운영을 하는 선수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납득 가능한 수'만' 두려고 하게 되기가 쉽다. 상황에 따라 '지금은 덮어놓고 고를 외쳐야 할 타이밍이다!' '지금은 한 발 물러나도 충분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틀어막게 되는 것이다.

2국 장면도1.PNG <장면도>

<장면도> 흑을 잡은 허서현이 1,3으로 찌르고 들어간 장면. 백은 A로 받는 한 수뿐인 것 같은데, 여기서 이슬주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2국 장면도1-실전진행.PNG <실전진행>

<실전진행> 이슬주는 뜬금없이 백1로 좌상귀를 끊어갔다. 허서현은 '내가 뭘 잘못 봤나?' 하는 표정으로 혹시 모를 함정이 있는지 잠시 생각한 다음 2로 늘어갔다. 백의 3,5도 모두 악수. 그냥 놔둔 것보다 상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10까지 엷었던 흑이 모두 연결해버리자 오히려 백의 A와 B 자리 약점이 눈에 거슬린다. 흑이 크게 우세해졌다.

(AI추산 흑 98%, 약 10집 차)


2국 장면도1-참고도1.PNG <참고도1>

<참고도1> 이슬주는 왜 백1로 막지 않았을까. 아마 흑이 2,4로 끊어가는 수가 거슬렸던 것 같다. 8까지 연결하면 좌상 백이 공중에 뜨게 된다.


2국 장면도1-참고도2.PNG <참고도2>

<참고도2> 하지만 백이 9~15까지 지켜두고 나면 공수가 역전된다. 좌변도 응수해야 하고 중앙 흑도 엷은 데다가, A자리 젖힘을 당하면 우상 흑도 약하다. 이렇게 진행했다면 백의 우세였다.

(AI추산 백 65%, 1집반 차)


이슬주는 '<참고도1>처럼 끊기면 백이 나쁘다'는 생각에 그 진행을 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처럼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두터움을 유지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실전진행>을 보면, 백이 귀의 실리를 약간 얻은 대신 엷었던 흑 전체가 연결되어 버렸고, 역으로 백이 엷어져 버리며 한 수 가까이 손해를 보게 되었다. '조금 당한 건 맞지만 정수대로 가자'는 식으로, '당해주는'것을 각오했다면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2국 장면도2.PNG <장면도2>

<장면도2> 이후 상당한 수가 진행된 다음의 모양이다. 백이 중앙을 수습하는 사이, 흑은 어렵지 않게 우하 집을 불렸고, 중앙을 장악했다. 허서현(흑)의 필승지세가 이어지던 중, 아예 숨통을 끊으려던 흑1이 성급했다. 기회를 노리던 이슬주가 눈을 번쩍 뜨며 2,4로 역습을 가한다. 큰일이다!


2국 장면도2-실전진행.PNG <실전진행>

<실전진행> 흑은 5,7로 물러나야 했고, 백이 8,10으로 흑의 요석 석 점을 수중에 넣으며 승부는 다시 만만찮아졌다. 흑A는 사실상 한 수 쉼이 되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허서현의 눈빛이 드러난다.


2국 장면도2-참고도1.PNG <참고도1>

<참고도1> 흑1에 두어 A자리 약점만 지키면 만사 끝이었다. 백은 원래라면 '가'의 자리에 받아야 하는데, 그 때 실전처럼 '나'의 자리에 끊어갔으면 중앙 백 대마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


2국 장면도2-참고도2.PNG <참고도2>

<참고도2> 백2로 중앙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흑3~7까지, 이번에는 우변 백이 걸리게 된다.


허서현은 이런 식으로 유리하게 판을 잘 짜서 가다가 어이없게 역전 당하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최선의 수 강박증', 정확히는 '블루 스폿'만을 두려는 고집에서 나온다. AI가 둘 만한 곳들만을 우선적으로 찾다 보니 '안전하게' 하나 지켜두면 이기는 상황이라도 그런 '안전한 수' 자체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신만의 판단 기준이 생기면 사라진다. 해결하려면 AI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기준을 세워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2국 장면도3.PNG <장면도3>

<장면도3> 백이 역전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흑도 멘탈이 흔들릴 상황에서 더 이상 차이를 벌려주지 않고 버텨냈다. 지금 형세는 정확히 반집승부. 하지만 끝내기가 얼마 남지 않아 백이 잘 두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백1이 계산착오로 패착. 2에 젖혀이어야 했다. 같은 2집짜리지만 이 차이가 어떤 의미인지는 잠시 후에 알 수 있다. 백3,5도 실수. 우변을 두어야 했다. 좌상 끝내기는 후수 2집, 우변 흑6자리 젖혀잇는 것은 역끝내기 2집정도로, 우변이 확실히 컸다. 이 두 번의 실수 때문에 흑의 반집승이 확실해졌다.


2국 장면도3-실전진행.PNG <실전진행>

<실전진행> 백은 1자리에 늘어두고 3,5로 한 점을 살려나갔다. 흑은 6자리에 두어 팻감을 확보한 다음 8,10으로 패를 걸어갔다. 이 패를 이긴 쪽이 이 판을 가져가게 되지만 흑은 A,B,C 등 팻감이 넘쳐나는 반면, 백은 팻감 쓸 곳이 마땅치 않다. 이후 허서현은 빈틈없는 마무리로 반집 승리를 지켜냈다.


2국 장면도3-참고도.PNG <참고도1>

<참고도1> 백의 승리코스는 1,3으로 하변을 젖혀이은다음 우변을 백5,7로 두는 것이었다. 하변 쪽은 실전과 집 차이는 똑같지만 '가' 자리 팻감이 무한대로 나오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우변에 백이 A로 두는 자리가 역끝내기 1집반짜리기 때문에 B자리도 백이 먼저 둘 필요가 없었다.


2국 장면도3-참고도1.PNG <참고도2>

<참고도2> 흑은 1,3으로 받아야 한다. 이때 백은 4,6으로 젖혀잇는다. 흑이 7,9로 조이면 백은 10으로 이어 A와 B를 맞보기로 한다.


2국 장면도3-참고도2.PNG <참고도3>

<참고도3> 흑1과 백4는 맞보기이고, 흑이 7자리에 두고 나면 백8과 흑9 역시 맞보기이다. 마지막으로 14의 곳 패가 승부를 가르게 되는데, 백은 A~C까지 팻감이 넘쳐나는 반면, 흑에게는 팻감이 별로 없다. 이 진행이었다면 백이 반집 승리했을 것이다.


<총평> 이슬주로서는 초반의 판단착오가 뼈아팠고, 허서현은 중앙에서 무리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 한 판이었다. 보통 이렇게 되면 나중에 큰 실수를 한 쪽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판에서의 허서현은 다시 정신을 다잡고 끝까지 집중했고, 막판에 흔들렸던 이슬주를 간신히 제압할 수 있었다.


260수 끝, 흑 반집승


[하이라이트]


1국 장고 : (흑)김민서 (백)양쯔쉔


1국 장면도.PNG <장면도>

<장면도> 초반부터 계속 밀리고 있던 김민서가 드디어 역습의 기회를 잡았다. 흑1로 뻗어간 수가 독수. A의 곳으로 두어 대마를 끊는 수와 B의 곳에 두어 우변을 부수는 수가 맞보기가 되어 백이 곤란해졌다.


1국 장면도-1. 참고도.PNG <참고도>

<참고도> 백2로 우변을 지키는 수는 불가능하다. 흑이 3을 선수해두고 5,7로 끊어가게 되면 상변 백 대마가 전부 잡히게 된다. 자충 때문에 10쪽으로 끊는 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1국 장면도-실전진행1.PNG <실전진행1>

<실전진행1> 어쩔 수 없이 양쯔쉔은 백2로 상변을 살린다. 흑의 3,5는 예정된 수순. A의 약점을 간접 보강 하기 위해 8로 둬보지만 9로 막자 약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1국 장면도-실전진행2.PNG <실전진행2>

<실전진행2> 백은 10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흑이 11에 찝어간 것이 결정타로 흑19까지 우변이 초토화 되어서는 흑승이 확정됐다.


1국 장면도-참고도.PNG <참고도1>

<참고도1> 백에게는 기사회생의 한 수가 있었다. 바로 백2,4를 먼저 선수하는 것. 보통 이런 행마는 대악수이기에 떠올리기 정말 어렵다.

1국 장면도-참고도-진행.PNG <참고도2>

<참고도2> 이제는 7,9로 끊어갔을 때 수상전이 달라진다. 백세모 자리를 교환해둔 효과로 A의 곳 공배가 하나 늘었기 때문에 이 수상전은 백이 한 수 빠르다.


다만 이 수순은 어지간한 수준의 프로기사도 짧은 시간 안에 보기는 어렵다. 흑의 공격이 예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민서의 주장다운 면모를 보여준 한 판이었다.


<한줄평> OK 주장의 KO승


183수 끝, 흑 불계승


3국 속기 : (흑)김다영 (백)김은선


3국 장면도.PNG <장면도>

<장면도> 김은선(백)이 1로 상변을 제압한 상황. 흑은 2,4로 시간을 연장한 다음 집으로 가장 큰 자리인 흑6에 두었는데, 이 수가 패착. 김은선이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중앙을 노려본다.


3국 장면도-실전진행.PNG <실전진행1>

<실전진행1> 김은선의 백1이 치명적인 일격. A를 노리는 동시에 B의 곳 축머리까지 겸하고 있다. 김다영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두뇌를 풀가동해보지만 이미 대책이 없다.

3국 장면도-실전진행1.PNG <실전진행2>

<실전진행2> 흑은 1로 받았고, 백은 2로 기어나간다. 흑은 3,5로 다시 시간을 연장한 다음 7,9로 덮어간다. 이때 백12로 는 다음 백14가 준비된 수. 이것으로 A와 B가 맞보기로, 흑이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3국 장면도-실전진행2.PNG <실전진행3>

<실전진행3> 흑은 1,3으로 연결할 수밖에 없다. 백은 4로 끊어 좌변을 수중에 놓는다. 흑에게는 5로 패를 버티는 수가 있지만 백의 팻감이 워낙 많아 백의 승리가 확실하다. 이후 백의 안전운행으로 차이가 좁혀졌지만 역전의 기회는 없었다.


3국 장면도-참고도.PNG <참고도1>

<참고도1> 흑은 1로 중앙을 지켜두어야 했다. 백은 2를 선수한 다음 4자리에 늘어 끝내기를 한다. 이랬으면 만만치 않은 승부. (AI추산 흑 승률 42%, 반집승부)

3국 장면도-참고도1.PNG <참고도2>

<참고도2> 백이 우하귀 끝내기를 하지 않고 실전처럼 백1,3으로 나가는 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2,4로 밀어붙인 다음 5로 끊고 7로 늘 때 8로 단수치면 축이다. 흑A 자리에 돌이 와있기 때문에 더 이상 수는 없다.


<한줄평> 교훈 : 오늘 지켜야 할 자리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그 내일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306수 끝, 백 1집반승


현재 팀 순위. 출처 : 여자바둑리그 홈페이지 https://w.baduk.or.kr/


이렇게 '언더독의 반란'이 많았던 1라운드가 종료되었다.

이겼든 졌든, 아직 리그 초반인 만큼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2라운드 1경기는 [포항 포스코퓨처엠 VS 여수 세계섬박람회]의 대결이다.

1라운드에서 휴번이었던 여수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각 팀은 월요일 11시까지 오더를 제출해야 하며, 제출된 오더는 월요일 14시에 일괄 발표된다.

출처: 바둑TV 유튜브 / 매주 목-금-토-일 저녁 7시 반 생중계

<2025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는 한 주에 한 라운드씩, 총 4경기를 진행한다. (하루 1경기)

매주 목-금-토-일 7시반에 바둑TV에서 중계하며, 바둑TV 유튜브에 들어가면 PC나 모바일로도 라이브 중계를 볼 수 있다.


1국과 2국은 저녁 7시반에 시작하며, 마지막 3국은 저녁 9시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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